우리나라에 영향을 줄수 있는 올가을 첫 태풍이 발생하여 진로를 잡았습니다,


기상청에 다르면 제23호 태풍 피토(FITOW)는 미크로네시아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꽃의 한 종류인데 진로가 우리나라쪽으로 오는것으로 발표 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진 예상진로가 우리나라쪽으로 오는것으로 보지만 다음 정보는 4일, 5일 후 태풍 위치가 유동적일 수 있음으로 이후 발표되는 기상정보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태풍 피토(FITOW)


태풍 피토(FITOW)


태풍 피토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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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현재의 잣대로 평가 할땐 신중해야 한다.

과거를 보고 현재를 가늠 하는 것은 지당하지만 과거를 지나치게 현재에 대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믄 말이다.
현재는 최대한 최신 잣대로 평가 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령 적군이 자기가 속했던 과거에 충성맹세를 한것을 아군이 된후 그때 맹세를 문제삼는 것 같은 우를 범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처리나 반성이 없는 잘못까지 없든것으로 하자는 말은 아니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평가 하지 마라

말조심-글조심 이야 머 그리 새로울것도 없는 당연한 것이지만 시대가 바뀌어 온라인 문화가 발전해서 사람이 나면 초등학생 때 부터 온라인에 짧은 자기의 글을 올리면서 자라고 있다.


말이야 시간이 가면 사라지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세월이 가면 들추어 낼수도 없지만,
온라인의 글은 비중이 있던 없든 상황이 어떠했던 관계없이 세월이 가고 난 후에도 그 글은 자기표현으로 따라다닌다.


사실 사람이 성격이 바뀌고 철학도 바뀌고 신분도 바뀐후 일지라도 과거의 발언은 그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자기를 곤란하게 만들수 있는 세상에 와 있다.

이제는 과거에 말한 내용이 실제로 현실에서 그사람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게 되었다.

미래에 공인을 꿈꾼다면 아예 어린이 때 부터 자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어린이의 발언을 문제 삼지는 않겠지만 그런 습관이 나이가 들어 가면서도 불쑥불쑥 생각없이 내 뱉을수 있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과거와 현재가 같은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다 과거와 현재가 변함없이 같을 수 는 없다.종교도 바뀌고 적군이 아군도 되지 않는가?

과거를 보고 현재를 가늠하는것은 지당한 이론 이기는 하지만 과거를 지나치게 현재에 대입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가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불안전한 상태에서 완전하기 위해서 실수하고 성장하며 바로잡으며 변해 가는것이 인간이다.
개념없는 인간에서 개념있는 인간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적군이었다가 아군이 되기도 하며 사상이 다르다가도 같은 사상이 될수도 있으며 무서운 이념의 차이로 인해서 원수이든 사람도 우리의 체제를 신봉하고 큰 우군이 되기도 한다.


과거를 너무 현재에 대입 하면 어떤 개인에게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어떤분들은 인생을 걸고 모든것을 바꿨는데도 자꾸만 과거를 보고 배타적으로 판단해서 큰 재목을 버리는 경향이 있는것은 결과적으로 큰 손실이며 화합을 해치는 일일것이다.


과거가 어떠했느냐를 따지는것은 중요 하지만 현재 그사람이 어떤가를 살펴보는 것은 더 중요 하다는 말이다.    

한번 실수가 무덤까지 따라 다닌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수 있으며 누구를 믿을수 있을 것인지 되묻지 않을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발언이나 행동 때문에 현재는 달라진 사람까지도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재단해서 단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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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잣대 The Scales.


저울은 무게를 재는 도구입니다.
무게를 재기위해서는 저울의 절대적인 신뢰가 있을때 그 저울은 효과를 보는것이며 잣대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것입니다.


작게는 어린이의 싸움에서 부터 사회의 모든 제도는 법이라는 잣대로 저울질하고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판가름 합니다.


이 저울은 모든 구조나 사용조건이 양쪽다 동일할때 그 결과를 믿을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국제적인 큰 사건이나 큰 이익에 관련 된 사안일수록 인위적인 제3의 개입없이 공정한 조건에서 저울을 사용할때 그 결과를 따를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새 뜨는 특허 관련 뉴스를 보면서 나라안이나 밖이나 남의 나라나 내나라나 구분없이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기를 기대 해 봅니다.

그래서 중요한 무게를 다는 저울 눈금의 판독은 힘있는자가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모든사람이 상식에 의해서 읽을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렇게 판독된 저울의 결과값이 무시 당하거나 번복 된다면 그런 굳이 저울에 의지해서 형

평성을 따질 필요가 없어 질것입니다
.



또 저울을 조작하거나 저울의 구조가 일방적으로 한쪽에 유리하게 되 있다거나 저울의 계량조건이 처음부터 한쪽에 유리하게 설정되는등 그 저울의 신뢰성이 없을때는 차라리 저울을 사용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것이 낳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너무 복잡한 저울을 사용하려 해서도 안됩니다.
복잡한 저울일수록 조작하는 과정이 숨겨질수 있습니다.


저울과 잣대는 언제나 정확하고 도덕적으로 믿을수 있는 사람이 저울이나 잣대를 조작하길 바라지만 때때로 그 저울이나 잣대를 가진 사람이 부도덕하거나 자기쪽 이익을 대변하게 될 경우는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저울을 사용할땐 바람부는 장소같은 곳을 피하는지혜도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힘이 있는 자가 저울을 가지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동작시키기는 쉽습니다.

평행선을 달리는 수평축에 아주 작은 무게만 더해도 한쪽에선 계속해서 물리적인 투자를 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곳에서 부터 모든사람은 저울의 감시자가 될때 사회가 투명해 질 것이며 저울의 결과값을 수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투명하고 올바른 저울의 결과값 마저도 무조건 무시하고 자기가 유리할때까지 자꾸만 다시 하자고 한다면 그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바른 저울이나 잣대가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바르고 정확한 저울과 잣대가 필요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대중으로 대충 결정하는 사회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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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고 장마전선이 어떻다꼬?

올여름 처럼 무덥고 긴 가뭄은 처음이다.
약 40일 이상 비같은 비 한번 안오는데 TV만 키면 비가오고 장마전선이 어떻고 한다.
정말 환장하게 무더운데...

너무나 가물어서 하천은 녹조가 발생하고 야단인데 비가 많이 온다고 ?
참 남의 나라이야기 처럼 뉴스는 들린다.


부산은 불볕더위로 미치겠는데 ...............



불볓더위


너무더워서 어떤분이 아예 옷을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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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계단길을 가길 싫어하는 사람은 그 이유가 무었일까?


산행을 하다가 등산로에서 별로 위험하지 않는 구간에서 계단을 만날때 계단옆 흙길로 가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이분들이 준법정신이 없고 시키는 대로 하기를 싫어하는 곤란한 사람이라서 그럴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며 그분들이 계단이 아닌 옆의 흙길로 산을 오르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었인진 모르지만 무시하지 말고 알아 보자는 생각을 해 봅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나무나 철로 된 계단을 자주 만나는데.
일기 불순할때 산행을 해야 한다면 꼭 필요 하기도 한 구조물로서 고맙게 생각하며 우리가 이제 살만해 저서 국민이 이런 혜택을 받는것이라고 생각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별로 힘들지 않는(객관적인 표현이 좀) 등산로에 설치된 계단에서는 그 옆으로 흙길을 배려한 곳도 있지만 길이 없는곳임에도 불구하고 험한 옆길로 걷는 사말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도심에서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범벅인 곳에 살기 때문에 흙길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요?

또 계단을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면 무릅관절에 좋지않다고도 하는 데 사실인진 모르지만,
하여튼 일부이긴 하지만 계단길과 흙길이 함께 있을때는 흙으로 걸을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계단을 산길에 설치 할 때는 여러가지로 심사숙고 해서 공사를 하리라고 믿습니다만,그래도 일부 흙길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편에도 서서 슬기로운 방법으로 자연상태로 위험하지 않은 길을 옆으로 걷는 사람들과 함께 걸을수 있도록 연구 해 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래사진은 계단옆에 흙으로 걸을수 있도록 배려해서 흙길을 보존한 모습이며 계단이 아닌 옆길로 걷는모습을 찍은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단으로 걷습니다.

이 글은 산에 계단 설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산의 계단은 토사 유출을 방지하고 자연을 지키며 위험을 방지하고 산행을 편하게 하는등등,
여러가지 이유에서  꼭 필요한 것임을 잘 알고 있으나 계단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는 것을 말 하는 것 이며 이런사람들이 왜 계단으로 걷기를 싫어하는지를 알아 보면 어떨까 생각 해 보는 것 입니다..


그래서 만약 그 이유가 밝혀지고 계단옆의 흙길로 걷는것의 좋은 점이 있다면 많은 계단공사 할때 참고 하면 좋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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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찜통더위 피서 열대 수목관에서


남부지방은 연일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 발도 담구고 피서도 할겸 화명 수목원을 찾았다.
다릴 건너기고 계곡을 가기전에 열대식물관 유리하우스를 들렸다.

열대식물들이야 제철만나서 좋겠지만 바깥도 찜통더윈데 안이야 말할것도 없이 덥지만 그래도 이열치열이란 말이 생각나서 좀 덥지만 참고 한바퀴 돌면서 제철만나 활짝핀 열대 식물들의 예쁜꽃 사진 몇장을 찍었다.


사실 밖에 나와서 느기는 기온은 아까 들어 갈때보다 훨씬 시원했다.
이게 이열치열 아니고 무었인가.
더울때 더 더운곳에 들어갔다 나오면 아주 쉬원하다는 것을 체험해서 이제야 이열치열을 알것같다.

이열치열 피서하며 열대식물들을 찍은 몇장의 사진을 올립니다.
쉬원하게 즐감하세요. 


열대식물

열대 꽃들이 예쁩니다.

열대식물관


이열치열-열대식물관


열대식물


열대식물관


미인수

이 무시무시한 도깨비 망망이 같은 나무 이름이 미인수 랍니다.
이 미인나무를 보면서 역시 미인에게 함부로 접근하면 낭패 당한다는 걸 떠 올리려나 봅니다.


이열치열-열대식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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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생살타(我生殺他).

바둑판에서 터득하는 진리 아생살타(我生殺他). 바둑을 두다 보면 사람마다 하수 때 바둑을 익히는 스타일은 다르다.

어쩌면 살아가는 스타일과도 연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분은 저돌적으로 남을 막 때려잡으려고 하는가 하면 어떤 분은 안전하게 자리 잡고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생살타(我生殺他)라고 하는 말이 있다.
요새는 죽어도 Go라는 말도 있고 나도죽고 너도 죽고 또는 살아도 함께살고 죽어도 함께죽자는 물귀신 작전도 있긴하다. 

아생살타(我生殺他)는 삶의 진리가 될 만큼 지혜로운 행마이지만 막무가내로 마구 공격으로 일관하는 행마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병법으로 본다.

더욱더 어리석은 병법은 무모하게 덤비는 행마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어 휘말리는 것이다. 작은 바둑판 하나에서도 삶의 이치를 익힐 수 있는데,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 간에도 이 이치는 변함없이 적용된다. 
무모한 수로 마구 덤비는데 감정이 앞서서 미련하게 붙어서  깨 지는 최 하수도 있다.

집구석에 땟거리가 없어도 가장이 이판사판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경우나, 회사가 부도 직전인데도 경영자가 큰 것 하나 한다고 투기만 하고 다닌다거나,다 바둑판에서 보여주는 아생살타(我生殺他)의 진리의 테두리 안에 속한다고 본다.

 이렇게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연륜이 쌓이고 고수가 되면 안으로 삶을 튼튼히 하고 심사숙고해서 공격 한발을 내디딘다. 


아생살타(我生殺他)



우리는 무모하게 날뛰는 행마로 마구 덤비는 바둑에 꼬여서 덩달아 덤비지 말고 차분히 분석해서 안으로는 실리를 지켜서 국력을 키우고 밖으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며 때가 왔을 때 비로소 움직이는 고수다운 행마를.....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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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스승이 되려 합니다.
남이 나를 가르치면 기분 나쁘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 있지만 내가 나에게서 배우고 터득하게 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스승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메모를 쓰며 자기의 일기를 남깁니다. 

내가 나의 스승이 되려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인 기록들은 남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며 만약 본다면 부적절한 내용일 수도 있고 또 나의 개인적인 일로서 감추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 나의 일기를 남이 봐도 괜찮은 내용으로 쓰고 싶은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천하기 힘든 것은 남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내용들의 대부분은 손익과 관계되거나 꼭 부도덕한 일은 아니 드래도 남에게 공개됬을�?떳떳하지 않은 내용도 더러는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은 집안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 이기 때문에 알려지는 것이 싫기도 하고 또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공개하진 않지만 공개가 된다고 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까지도 감추며 살고 있습니다. 

시시콜콜 한 것들까지 떠 벌리면 경망스럽거나 지식이 낮은 사람으로 보는 문화가 깔려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물론 사업을 하는 내용이나 직장에 관련되는 기관이나 단체의 내용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공개적인 일기와는 상관되지 않는다는 전제로 말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일기를 남에게 보이려고 쓰지는 않지만, 
만약 보여진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이 쓴다고 생각해 보면 상당이 고민하게 되고 일기를 진솔하게 공개로 쓰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알 게 됩니다. 

내가 블로그 일기를 쓰는것은 무슨 글쓰는 연습도 아니고 글재주 부리는 것도 물론 아니며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면 남에게 보여줘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쓰면서 나이들여 가며 스스로 깨끗이 살게 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입니다. 

지금까지 블로그 일기를 쓰면서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며 가끔 내가 써 놓은 글의 독자가 되어서 그때 쓴 글을 읽어보면 어리석은 일,감추려고 했던 일,속이려고 했던 일,말장난하려고 애쓴 것들까지 분명하게 느끼면서 나를 성찰하는 기회가 되고 그래서 내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이 나를 가르치면 기분상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가 있지만,내가 나를 가르칠 땐 전혀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스스로 스승이 되어 나를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를 공개로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장 좋은 자기성찰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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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文化)차이

문화(文化)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는 말 이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상당히 복잡한 여러 가지를 내포하는 것으로서 크게는 사상,언어,종교등으로부터 국지적으로는 의상,의례,법 또는 도덕이나 규범,등을 기본으로 가치관이 결정되는 광범위한 사회생활 양식의 표현으로 봅니다. 


이번에 언론으로부터 보도된 미국의 모 회장님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에게 악수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무려면, 그분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소홀히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은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문화에서 의례,도덕,규범은 국지적으로 다를 수 있는데 이를 그분이 소홀히 한 것이거나 철저히 준비 했드래도 순간적으로 실행하지 몯하고 실수했거나 일 것이며, 어떤 경우 였드래도 나무라거나 질타할 생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며 이를 보면서 매사 우리의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관점에서 말 하는 것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곳에 가려면 사전에 그곳에 대한 지식을 모으고 도착한 후에는 그곳의 분위기를 살피곤 하는데 이는 크게 그장소의 고유 문화를 탐색하려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문화를 따르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론이 뉴스로 말 하는 것뿐이며 우리나라가 이를 문제삼거나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고 이 일 그 이상에 관심 없으며 오직 문화라는 관점으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때때로 실수하고 나면 변명으로 문화의 차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항간에서 말하는 이런 실수는 문화가 빌미로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떤 곳에서의 국지적 문화가 글로벌 시대에 인용되어 실수를 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실수를 커버 하지는 못합니다. 

미국문화가 어떻거나 그런걸 따지려는 것도 아니고 미국문화도 잘 모릅니다. 


다만 이 뉴스를 보면서 이것을 계기로 우리가 크고 작은 장소에서 작은 것을 간과하여 보여준 어떤 모습 때문에 본인의 내면적 성숙도나 지식 정도와 또는 크게 쌓아 놓은 입지와는 상관없이 잘못 비춰 질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조심을 하자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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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과 제사(祭祀)의 존속
제사(祭祀) 지내는 날. 어젯밤에는 집사람과 함께 새벽 2시반이 되서 집에돌아왔다. 숙부님 기일이기 때문에 진주까지 가서 오랜만에 만나는 사촌 형제들과 함께 제사를 모시고 부산까지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안의 종손으로서 제사 모시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이의없이 오랫동안 해 온 일이며 이일 때문에 멀리 있는 형제들이 일 년에 몇 번씩은 우리 집을 방문한다. 좋게 생각하면 제사 때문에 멀리 떨어저 있는 형제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오는 사람은 바쁠 땐 귀찮기도 할 것이다. 나도 사촌 집에 제사가 있는 날은 멀고 가까운 걸 떠나서 방문한다. 

후손으로서 조상을 기리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서 이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조차 싫은 사람이다. 우리 세대에서는 나와 같은 생각으로 형제들이 모이곤 있지만 잠시 생각해 보면 거기 모인 형제들 대부분이 나를 포함해서 환갑을 넘긴 사람들이다. 칠순을 넘긴 분도 있다. 

따라서 넉넉히 잡아서 20년 정도 후에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그 주역들은 나의 자식 세대인 내 아들과 내 조카들인 것이다. 걱정 안 해도 때가 되면 다 하게 되있다고 하며 전혀 걱정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 한창 일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 젊은이들은 나처럼 멀리 친척 집에 제사 지내러 한밤중에 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조상님들로부터 대대로 해 왔던 관습인 이 유서깊은 행사를 나의 대에서 접을 수는 없다는 책무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내가 죽고 난 후에 저희들이 어떻게 하든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이 일을 축소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못 먹고 살아서 제사 지내는데 드는 돈이 아까운 것도 아니고 조상 님들께 정성껏 제사를 지내며 동기간에 우애도 깊어지는 이 행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곧 산소를 돌보는 일과도 연계된다. 내가 사랑하던 나의 부모님 산소에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봉분이 다 깨 없어지는 불상사를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지만, 만약에 후손들이 조상을 봉안하는 행사를 하기 싫어서 그만둔다면 이렇게 되는 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가끔씩 이 일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 형제 중에서도 연장자는 이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 복안을 세우는 듯하지만 그럴 듯한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수많은 형식에 따라서 그것을 지키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좋든 나쁘든 그 긴 세월을 꾸준히 해 오던 우리의 가치관이 갑자기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민족마다 그들의 고유한 관습은 있으며 그걸 지키려고 애를 쓰며 산다. 

때로는 종교나 신앙 같은 의미로 보존되기도 하며 또 그것에 상충되어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적어도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은 표현하는 방법과모습만 다를 뿐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하나의 방법으로 이 중요한 일을 유구히 지켜나갈 수 있도록 나의 다음 세대에게는 부하가 좀 가벼워 지도록 하고 싶다. 

어차피 다음 세대에서는 친척동기들이 지금처럼 한꺼번에 모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개인들이 혼자 이 행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나 기업들이 함께 제삿날을 어떤 방법으로 배려해 준다면 상당한 부하를 덜어주어 업무 능율도 유지하며 개인들의 관습을 지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시니어리포터 정주호>
http://www.yourstage.com/newsinfo/cultureview.aspx?thread=7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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