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형상인 가야유물

The Ancients Cultural relic of KOREA 


복천박물관이 가까운곳에 있어 가끔 둘러 보는 편인데,특별한 이벤트나 전시회를 할때는 가보곤한다.

그러나 상시 전시품 중에서 신발모양 토기가 있는데 이 히안한 모양의 토기를 볼때는 항상 의문이 생기고 또 미스테릭한 부분이 하나둘이 아니라서 한참을 바라보곤한다.


5세기경이라고 하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겨우 집단생활이 자리잡고 작은 국가로서 지도자가 형성되고 열악한 농경생활을 하는정도의 시기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토기를 보면 상당한 문화생활을하면서 하나의 장식품으로 만든작품으로 밖에 생각이 안된다.

무슨용도로 사용하든 집기로 생각한다면 너무도 설명이 부족하다.

과연 고대인들이 이 히안하게 생긴 토기로 무었을하려고 만든것일까?

똑똑한 현대인들의 머리로 생각해 보세요..


밤그릇이나 물그릇이나 잔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쟁하는 무기는 더욱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이 유물은 부산복천동고분 53호에서 출토된 신발모양 토기라고 명명한 가야 유물입니다.


5세기경 가야인들이 만든것인데 복천박물관에 갈때마다 보면서 경이를 느끼는 작품이다.

고대인들이 이 작품을 생활도구로 만들지는 않았을것이라면 지금처럼 권력자의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용 작품이란말인가..


신발모양 토기미스테리 형상인 가야유물 The Ancients Cultural re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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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zomzom.tistory.com BlogIcon 좀좀이 2014.07.24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것은 정말 장식 소품으로 사용했던 것 같은데요? 일상 생활에서 사용했던 소품으로 보기에는 너무 실용성이 없어 보여요...

  2. Favicon of https://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2014.07.24 1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 말입니다,고대인들의 권력자가 장식용으로 즐긴 소품이라고 보는게 가장 적절하겠지요..그렇다면 그들의 문화수준이 경장하다는..

  3. BlogIcon 김수년 2014.07.26 0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용도 그릇같네요~ 곡물도 담아 먹고, 물도 담고~
    장식용이 아닌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할수 있겠네요~~


2014년 6.25일이 다가옵니다.
성지공원을 산책하고 내려오면서 방문한 자유회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느닷없이 북한 공산군이 군사분계선인 38선 전역을 공격해 옴으로서 발발한지 64년 째를 맞이 합니다.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6.25전쟁은 

북한공산군 전면 남침 →국군 자력방어 중과부족 → 유엔연합군 파병 → 공산군격퇴 → 북한전역수복→중공군개입 →다시38선부근후퇴→ 휴전성립


대략 이렇게 되어 지금까지 고착된 전쟁이며 한때 낙동강 전선이 일부 무너지고 부산의 임시수도가 아물했던시기를 거치기도 했으며 군가"전우의시체를 넘고넘어"라는 가사가 쓰여젔다는 낙동강전투를 승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해서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입니다.


그리 오래 된 전쟁도 아닌데 이미 우리는 잊어버리고 살지만 성지곡 공원을 산책하고 내려올때 거기를 들려서 여러가지 자료를 보며 상기하게 된다.


상기하자6.25상기하자6.25


6.25인명피해6.25인명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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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을 오르곤 하는데 가끔은 금샘 코스를 다닙니다.

그때마다 금샘을 보지만 금샘설화나 역사적인 이야기는 배제하고 현대과학으로 볼때 사실 미스테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금샘을 보지 못한분들을 위해서 금샘을 동영상으로 찍었습니다.
사진은 많지만 실제로 가보지 않은분들은 사진만 보고는 실감이 안날것입니다.
금정산 고당봉에서 약300M정도 아래 바위봉군중에서  벼랑쪽에 솟아오른 한 바위위에 오묘한 샘이 있습니다.

동영상으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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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칠수 없는 사랑을 느끼며 - 용주사에서
-깊은정 어느땐들 그치리-


아주 오래전에 용주사 부근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시절의 기억을 찾아서 방문한 용주사 비석을 읽으면서 또다른 감회를 느꼈다.
명절을 보내면서 새삼스럽게 이 사진과 함께 용주사를 방문한 기억이 나서 쓴다. 


부모은중경을 새긴 비석에서 10번째 구절을 되새기게 하는 그 비석 마지막 아래 힘들게 살아가는 끈질긴 이 귀한 식물의 사진을 담았다.


마지막 문단아래  육중한 비석 틈새에서 가혹한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 있는 이 작은 단풍나무를 지나칠수 없었습니다. 

불교의 경전은 우리가 말로 다 할수 없는 것이지만 여기 이 사진을 찍을때 숨겨저 있던 감정을 북밭쳐 오르게 했습니다.


모질게 깊은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끊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이들어 이제사 부모님 사랑을 운운하는 어리석음으로 지은죄 씻을수는 없지만 그래도 잊고있던 것을 이 작은 단풍나무 하나가 나를 가르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깊고도 지극한 은정 언제나 사랑으로 넘쳐흐르도다.

앉거나 서거나 마음은 그림자처럼 멀리 또 가까이서 항상 서로 따르도다.

백살된 고령의 어머니가 팔십 먹은 자식 걱정하고 계시니

이러한 깊은 정 어느땐들 그치리까 목숨이 다한날에 비로소 떠날거나."


이 부모은중경 10구절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내 어머님께서 정신이 혼미하여 곧 세상을 떠나려 하실때에도 내 어머님은 자식 생일을 며느리에게 몇번씩 챙기시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지나간 아들의 생일을 혹시라도 놓지는지 며느리에게 몊번을 되물으신다.

아이 생일 챙겨 줬느냐고..


오랜만에 찾은 이곳에서 용주사를 중심으로 이부근의 조선왕조 능과함께 효행의 근본을 찾으려는 모습을 볼수가 있어 기분이 좋았다.  


그칠수 없는 사랑을 느끼며 - 용주사에서


父母恩重經(부모은중경) 원문


懷胎守護恩(회태수호은) : 나를 잉태하시고 지켜주신 은혜

臨産受苦恩(임산수고은) : 해산에 임하여 출산의 고통을 감내한 은혜

生子忘憂恩(생자망우은) : 자식을 낳았다고 근심을 잊어 버리는 은혜

咽苦吐甘恩(인고토감은) : 입에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이면 뱉어서 먹이신 은혜

廻乾就濕恩(회건취습은) : 마른 자리에 아기를 눕히고 진자리에 누우신 은혜

乳哺養育恩(유포양육은) : 젖 먹여 길러주신 은혜

洗滌不淨恩(세척부정은) : 깨끗하지 못한 것을 씻어 주신 은혜

遠行憶念恩(원행억념은) : 자식이 멀리 가면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은혜

爲造惡業恩(위조악업은) : 자식을 위해 나쁜 일까지 서슴지 않는 은혜

究竟憐愍恩(구경연민은) : 끝까지 자식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
佛經(불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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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왕위연대와 계보 도표

조선왕조 재위 505년간의 가계도 및 왕위 계승 및 그 후의 도표 .
조선왕조 왕위계보와 도표조선왕조 왕위계보와 도표
1.태조(太祖, 1335~1408) 1392~1398

휘:성계(成桂). 고려말 무신,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92년 조선왕조건국.


2.정종(定宗, 1357~1419)1398~1400 휘:방과(芳果).사병혁파 삼군부에 편입함.즉위 2년만에 방원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됨.


3,태종(太宗, 1369~1422)1400~1418

휘:방원(芳遠). 태조의 개국에 공헌,왕자들의 왕위 다툼에서 승리 왕위에 오름. 많은 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함.


4,세종(世宗, 1397~1450)1418~1450

휘:도. 태종의 셋째아들.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함,훈민정음 창제,측우기,해시계 등 많은 과학기구 창제.국방강화 북쪽 사군 육진, 남쪽 삼포를 둠.


5,문종(文宗, 1414~1452)1450~1452

휘: 향(珦).학문숭상 좋은인품,세종처럼 유교적 문치주의로 균형잡인 정치를 하고 문화를 꽃피움.


6,단종(端宗, 1441~1457)1452~1455

12세에 즉위하나 계유사화로 왕위로 빼았기고 영월에 유배후 죽임 당함. 200년후 숙종때 왕위 복권되고 단종이라 함.


7,세조(世祖, 1417~1468)1455~1468

휘: 유.국조보감(國朝寶鑑), 경국대전(經國大典)등을 편찬, 관제 개혁등 치적.수양대군(首陽大君).


8,예종(睿宗, 1441~1469)1468~1469

휘: 광(胱).세조의 차남.세조가 시작한 경국대전 완성.


9,성종(成宗, 1457~94)1469~1494

휘:혈.학문을 숭상하며 억불승유정책을 폄,고른 인재를 등용하며 조선초기 문물 제도를 완성함.경국대전 편찬.


10,연산군(燕山君, 1476~1506)1494~1506

휘:융.무오사화, 갑자사화, 병인사화를 일으킨 폭군이며 많은 선비를 죽임. 중종반정으로 폐위됨.


11,중종(中宗, 1488~1544)1506~1544

휘:역.훈구파의 원한으로 혁신정치를 실패함 1519년 기묘사화, 신사사화를 초래함.


12,인종(仁宗, 1515~1545)1544~1545

장경왕후의 소생.기묘사화때 사라젓든 현량과를 부활함.


13,명종(明宗, 1534~1567)1545~1567

휘:환.중종의 차자.12세에 즉위함, 을사사화, 정미사화, 을유사화, 을묘왜변을 격은 많은 파란을 겪음.


14,선조(宣祖, 1552~1608)1567~1608

승하한 명종이 후사가 없어 16세에 즉위함. 이이, 이황 등의 인재를 등용하지만 당쟁과 임진왜란을 겪음.


15,광해군(光海君, 1575~1641)1608~1623

휘: 혼.계속되는  당쟁으로 임해군, 영창대군을 역모로 죽임(계축사화),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패륜을 함.
서책을 많이 편찬하며 문치에 힘쓰며  명과 후금에 대한 외교를함. 인조반정때 폐위됨.


16,인조(仁祖, 1595~1649)1623~1649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즉위함,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겪으며 치욕을 당함.


17,효종(孝宗, 1619~1659)1649~1659

휘:호. 인조의 차자.병자호란때 형 소현세자와  청에 볼모로 8년간 고역을 치른후 귀국하여 즉위함.
북벌을 마음에 담고 설욕하려 국력을 양성하기도 함.


18,현종(顯宗, 1641~1674)1659~1674

휘: 연.남인과 서인의 심한 당쟁때 즉위함.많은 유신들이 희생되지만 대동법을 전라도에 실시하며 동-철제의 금속활자 10만여자를 주조함.


19,숙종(肅宗, 1661~1720)1674~1720

남인, 서인의 당파싸움인 기사사화와  장희빈과 연계된 환란이 끝없이 일어남.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며 국경을 확실히 함.


20,경종(景宗, 1688~1724)1720~1724

휘:윤.숙종의 장자이며 장희빈의 소생. 계속되는 사화가 극심하며 신임사화 등이 일어남.


21,영조(英祖, 1694~1776)1724~1776

당쟁 제거에 온 힘을 기울이며 탕평책을 쓴다,균역법을 시행하고 신문고를 부활하며 동국문헌비고를 발간 하는 등 국기를 바로잡기 시작하나 말년에 사도세자의 비극이 일어남.


22,정조(正祖, 1752~1800)1776~1800

휘:산.탕평책으로 인재를 등용하고 서책 보관 및 주 간행을 위해서 규장각을 설치함.
이른바 임진자, 정유자 등으로 불려지는 새로운 자체의 활자를 만들고 실학을 중히여기는 문화 시대를 펼침.


23,순조(純祖, 1790~1834)1800~1834

휘:공.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시대이며 김조순(金組淳) 등이 활거 했다 .종교탄압 신유사옥 같은 세차레에 걸친
천주교 대탄압이 있었으며 홍경래의 난이 
1811년 발발함.


24,헌종(憲宗, 1827~1849)1834~1849

휘: 환(奐). 8세에 즉위하며 즉위 5년에 천주교를 탄압하는 기해사옥을 치름.


25,철종(哲宗, 1831~1863)1849~1863

휘: 변. 후사없이 헌종이 졸 하여 대왕대비인 순원황후의 명으로 즉위.즉위 2년 안동김씨와를 왕후로 간택하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병사할때까지 진주민란 등 내환이 있었다.


26,고종(高宗, 1852~1919)1863~1907

휘: 희(熙). 흥선대원군의 차자임. 신 문물이 들어오는 구미열강의 문호개방 요구에 시달리며 대원군과 민비의 세력다툼으로 힘든시기임.헤이그 밀사사건이 1907년 주도하고 퇴위하며 임오군란이일어남.


27,순종(純宗, 1874~1926)1907~1910

이름:척(拓). 고종의 차자.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김.이후 35년간 일제시대에서 치욕을 당함.
일인들에 의해 이왕(李王)으로도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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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귀가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명언으로 간직하려 합니다.






역사란  지나간 것 들을 볼 수 있는 자기의 거울과 같고 ,
미래로 가는 디딤돌 같은 것이기 때문에 역사를 잊어 버리면 당연히 미래로 나아 갈 수 있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민족이 있다면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갈팡질팡 하다가 길을 찾아내는데 많은 고생을 한 후에 언젠간 바른길로 되돌아 오게 될 것입니다.

몇일전 한일전 응원팀 붉은악마가 내건 대형배너에서 본 글귀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운동경기와는 상관 없이 ,
아주 좋은 글귀로서 새겨야 할 만한 명언입니다
.


오늘의 명언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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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받는 중국의 문화재

중국이 당한 치욕적인 역사의 한 장이었던 1860년 10월 베이징에 진격한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중국의 유서깊은 위안밍위안(圓明園-원명원)에 난입해서 닥치는대로 보물을 갖어간 일이 있었다.


돌려 받는 중국의 문화재

당시 원명원에는 청나라 황금기의 강희제,옹정제,건륭제가 가치있는 서화 및 각종 역사유물 골동품과 금은 보석을 가득 모아 두고 있었다.


당시 공격한 병사들이 약탈한 문화재가 자그만치 마차 1000대 분량 대충 150만점에 이른다고 한다.
힘없던 시대를 지나고 이제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G2국가로서 국제적인 위상이 드높아지면서 당당하게 빼았긴 문화재를 돌려 받는 모습을 보며 남의 일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중국은 과거에 약탈당한 자국의 문화재의 해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조사단을 서구의 각국 박물관으로 보내고 있다.자국의 문화재가 있는 서구의 각박물관의 소장품 목록을 완성하려는 것일 것이며 추후 조직적인 반환 요청을 하려 할 것은 분명하다.

이번에 조건없이 반환되는 원명원 뜰에 안치되어 있었던 청동십이지상 가운데 두 점이 중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골동품 경매에서 낙찰된 이 보물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프랑스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프랑스 PPR그룹 회장의 손에 들어가서 표면적으로는 이 골동품을 개인적인 기증형식으로 중국에 돌려 주는 것이다.

이런 일이 현실로 이루어 지는것은 중국의 어마어마한 경제력이 한대에 9조원이상이나 하는 에어버스 여객기를 60대나 계약하고 사인하는 통큰 중국의 힘을 본것으로 풀이된다.
돌려주는 이 청동12지신상은 2009년 2월 실시된 경매에서는 약 3150만 유로(약 474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경매한다면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본다.

사람이나 국가나 돈을 벌고 위상을 스스로 높여 힘을 비축했을 때만이 과거에 당한 치욕을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일깨워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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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이 사상처음으로 중국의 천년고도 시안을 간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때 들릴 시안은 어떤 곳인지 알아 본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때 흔히 서안이라고 했던 곳이며 중국어로는  西安, 병음: Xī'ān,이라고 하며 중국의 산시 성의 주요 도시이며 시안 시의 옛 이름은 장안(長安, Cháng'ān),경조라 하며 산시 성의 성도인 곳이다.

도시전체의 지역에 고도로서의 성벽과 왕조때의 여러 웅장한 건물들이 여전히 건재하여 세계각국으로 부터 많은 관광객의 방문이 있는곳이며 역사적인 배경위에 발전하는 현대와 잘 조화되는 경제 산업 교통 첨단과학이 고루 발달하는 중국의 고대도시이며 근대도시이다.
또 고조선과 관련지어 이슈가 된 고대 피라미드 지역이 이곳의 주변에 있습니다. 


장안(長安, Cháng'ān)-시안시


고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하고 유명한 곳으로서 중국 역사 중에서 가장 많은 왕조가 수도로 사용한 유서깊은 도시이기도 한 곳이다.

중화라고 하는 중국의 지리적 중심으로서 중국대륙의 깊은 내륙에 위치한 곳으로서 중국 6대 중심도시 중 하나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이름난 도시이다.

과학연구,고등교육,국방 과학기술, 일반공업, 고급 신기술 산업기지, 우주비행, 항공공업센터, 기계제작센터, 방직공업등의 중심이라고 한다.
시안은 중국에서는 확실한 공업기초를 가진 곳으로서 중국 중서부지역에서 뛰어난 과학기술과 완전한 공업기반을 갖춘 대도시중 한곳이다.


중국 시안 피라미드


시안 시는 1992년 7월에 개방 도시로 지정되어, 유라시아 대륙의 연결통로로 중국 서부 최대의 도시가 되고 있다.

개혁 개방 이전에도 시안은 중국 경제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해 왔지만, 최근에는 경제발전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이 도시의 산업에서 중공업이 크게 차지하며 국방 산업 등의 특수 공업이 발전함으로서 경공업이나 기술 개발이 함께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이테크 산업 개발구, 경제 기술 개발구, 곡강 신구, 생태구, 염양국가 항공 하이테크 기술 산업 기지등 의 4구 일기지를 전략적으로 설치해서 집중적으로 육성되고 있다.

시안의 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문명의 하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중인(關中人) 문명은 시안의 문명의 선례로 추측된다. 이들의 특징은 관중십대괴(關中十大怪)라는 말로 표현된다. 시안은 또한 장안팔경(長安八景)의 중심지이며 역사성깊은 시안은 대한민국 경주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도시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지금도 발굴중에 있는
동현의 원산원(驪山園)에 있는 진시황릉과 병마용 무덤도 이 부근에 있다.


진시황릉 병마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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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Freedom is not free 라는 말을 상기 하면서 !

굳이 무슨 달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열들을 생각하고 일년내내 잊어 버려서는 안되지만 적어도 이 6월 한달만이라도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현충일이 생겼으며 곧 그 6월6일이 돌아옵니다.어떤 분들에게는 고통의 날이고 회한과 설움이 북받치는 한맺힌 날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그때 불과 5살의 어린이의 눈으로본 기억을 지금도 생생히 할수 있습니다.그리고 그후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 군필을 하면서 나의 절대적인 가치관이 체험학습으로 형성된 세대로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고 수많은 전쟁을 치루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고통스런 전쟁은 민족간의 아픔으로 남아있는 6.25 전쟁일 것입니다.

많은 침략으로부터 빚어진 전쟁 속에서도 우리가 이렇게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한목숨 바처서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며 그분들을 위해서 나라와 국민은 할 수 있는데 까지 배려하는 마음을 거저야 할것입니다.

지금 기념하는 현충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아직 제대로 정신도 없을 때인 불과 3년만에 40만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산화한 6.25동란 때문에 만들어 진 것입니다.
6.25전쟁이 1953년 전쟁을 잠간 쉬자는 휴전으로 어정쩡하게 마무리 한지 3년만인 1956년 국가가 안정을 되 찾으면서 그해 4월에 대통령령으로 매년 6월6일을 현충 기념일로 상기하고 공휴일로 지정 한 것입니다.

그후 1975년 12월 이 현창 기념일이 현재의 공식명칭인 현충일로 법으로 개정되고 실행하게 된 것입니다.  현충일은 6.25전쟁으로 산화한 우리의 국군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지만 넓은 범위로서 추모대상은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신 모든 선열님들이 대상입니다. 

현충일은 1956년 시작된 6월 6일인데 이 날은 우리민족에게 내려오는 풍습인 24절기 행사의 청명일과 한식일에는 산소를 손질하고 성묘를 하며 망종때는 제사를 지냅니다. 이 망종 일이 현충일 지정 해인 1956년에 6월6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제사를 지내는 날인 망종 일이 6월 6일이었고 현충일로 지정된 것입니다.지금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서 각종 최전방 전선에서 불철주야 국방에 임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마음속에서 어쩌면 희석되는 듯한 자유통일의 의지를 다시한번 점검하여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을 하여 북쪽의 고통받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행여라도 시행착오를 해서 오판이 발생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굳건한 국력배양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 오르는 6월입니다.

Freedom is not free

이사진은 부산 초읍에 있는 자유회관에서 찍은것입니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유를 말할때 종종 인용되는 이 유명한 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Freedom is not free 는 워싱턴, DC의 한국 전쟁 참전 용사 기념관 한쪽 벽에 새겨 져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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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강영덕 2013.06.14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등에엎고는 등에업고로!


정돈된 아름다움


조선통신사 재현 축제에서  부산취타대의 행렬을 봤다.
늠름하고 격조있는 품새와 화려하면서도 흐트러지지않은 의상이 아름다웠다.

의상을 마음대로 예쁘게 만든것은 아닐것이다.역사적으로 고증을 거처서 최대한 그때 그의상을 재현했으리라고 생각한다.지금이야 대학에서 의상을 전공하고 공부한 사람들과 디자인전문가가 좋은 재료로 만든것이지만 그당시에 저렇게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의복과 모자와 악세서리 하나라나를 보면 지금 디자인전문가들이 만들어도 저많큼 아름답고 정돈된 의상을 만들수 있을까 할 정도로 근사하다.

부산취타대 정돈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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