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왜성(龜浦倭城).

왜성은 왜국이 지은 성이란 말이며 1592년 선조시대  임진왜란이 났을 때 당시 조선을 침공한 왜군들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공격을 위해서 안전한 교두보를 설치한 것이며 양산과 김해 부산을 거점으로  조선에 안전한 근거지로 활용되고 조선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석성이다.

구포 왜성구포 왜성

  주로 그릉지를 앞에두고 얕은 동산을 확보하여 그 상부에 축조하는데 우리나라의 담벼락같은 모습으로 지그자그로 입구를 휘돌아 들어올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왜성은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에 걸처 축조한 성이 그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으며,동남해안 전반에 걸처서 약 30여개가 현존한다.

이 성은 임진왜란때 처음 이곳을 점유한 왜장(倭將)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 일명:こばやかわ たかかげ )와 다찌바나(立花宗茂 일명:たちばな むねしげ)들이 김해의 죽도성(竹島城, 金海城)의 지성(支城)으로 김해와 양산과 구포 사이의 소통 요충지로 쌓은 왜성으로 높이 약 8~10m 정도이며 주곽과 보조곽 합 8~10개 정도로 알려저 있다.

바닷가나 강의 하구에 설치하고 본국으로부터 보급 수송이나 연락이 쉽도록 하고 있다.
이 구포 왜성은 현재의 낙동강 구포대교에서 화명동 쪽에 위하고 있는데  산의 높이는 대략 76m 표고로 나오는 언덕 정도에 불과한 총 넓이 2000평 정도의 작은 규모이다.

울산으로부터 순천까지 이어지는 해안 벨트의 중간부근인 이 구포왜성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내륙 작전의 요충을 담당하려 한곳으로서 마주보는 김해왜성(죽도왜성),상부로 호포왜성과 함께 전략적인 위치에 있던 성이었다.

구포왜성구포 왜성


지금은 성상에는 아무것도 없고 성곽만 남아있고, 일반인의 사유지와 국유지가 섞인 경작지와 함께 성벽만은 거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당시에는  의성, 감동포성, 구법곡 진 으로도 불렸다고 하며 총 10여개의 성곽으로 구성된 약 2000평에 달하는 넓이에 선조 26년(1593)에는 5000명 정도까지 주둔했다고 한다.

1596년에 강화회담으로 잠시 철수했다가 1598년 정유재란때 다시 들어와서 주둔하다가
그 해 5월에 이 왜성을 폐기하고 서생포 왜성으로 이동 합류 했다고 한다. 

왜군이 우리땅을 침탈한 흔적이지만 이 구포왜성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 위치한 기념물 제 6호로 지정되고 있다.

가는 교통은 지하철만 설명한다면 지하철 3호선덕천역에서 하차하여 10번 출구로 나와서 구룡사 쪽으로 가도 되고 4호선 숙등역내려 6번출구로 나와서 낙동탕 쪽으로 가도 되며  4호선 덕천역에서 내려12번 출구로 나와서 락천사쪽이나 구룡사족으로 오르면 됩니다. 거리는 도보  500~ 1Km 정도 된다.

북구 문화빙상센터를 거처서 간다면 예쁜 육교를 이용해서 남해고속도로를 황단하여 구룡사로 갈 수 있다.

구포 왜성구포 왜성

 

구포 왜성구포 왜성

 

구룡사구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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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덕천2동 | 구포왜성(龜浦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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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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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2012.03.13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포왜성(龜浦倭城).


    왜성은 왜국이 지은 성이란 말이며 1592년 선조시대 임진왜란이 났을 때 당시 조선을 침공한 왜군들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공격을 위해서 안전한 교두보를 설치한 것이며 양산과 김해 부산을 거점으로 조선에 안전한 근거지로 활용되고 조선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석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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