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에세이



오월의 화창한 봄날 동래부사는 조선조정의 정사,부사,종사관을 비릇한 400여명의 귀한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해서 약1년반이상이 걸리는 바다건너 오사카 까지의 대 여정을 위해 한양에서 지금부산의 당시 동래부까지 온 여독을 풀어주고 환송연회를 베푼다. 


조선통신사

역사상 귀한 이 행사는 이웃나라와의 통신(신뢰를 전함)을 위해서 약 200년간 국가간의 사절단을 파견하고 일본은 전체비용을 들여서 극진히 환대하는 큰 행사를 치른 역사적인 행사가 바로 조신통신사이다. 


지금 부산에는 곧 출발하는 통신사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그때 동래부의 사람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고증을 거처서 그 오랜 시간 우리가 문화를 전달하던 행사가 오늘에 재현되고 있다. 

지금도 그정도 인원이 움직인다면 큰 규모일 것인데 300녀년전에 400여명의 정부사절단이 움직인다는 것은 치밀하고 대단한 행렬이었을 것임엔 틀림없다. 

길가에 늘어선 일본인은 당시에 우리의 사절단이 입고지나가는 의복이나 신발이나 의관이나 심지어는 말에 부착된 작은 장식까지도 그들에겐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 유행이 될 만큼 강력한 한류의 전달식이기도 했었다. 

지금 우리는 한류가 일본을 힘쓴다고 하지만 사실 한류는 오랜 역사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임나일본이라고 하는 대가야는 사실은 우리의 문화를 일본에 뿌려준 것이라는 것을 전 일본에서 발굴되고 있는 대가야형 토기나 금장유물에서 알 수 있으며, 
백제가 한때 강력한 힘으로 일본에 문화를 전수했으며 이후 백제유민이 일본의 근대화의 주축이었다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알려진일이며 시기는 다르지만 일본에는 도래인 이라고 하는 어정쩡한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를 일깨워준 것은 바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지 하늘에서 도래한 것은 결코 아니지 않는가. 

지금도 한류는 계속해서 강하게 일본을 몰아친다. 그들은 온갖 정치적인 수단으로 한류를 거부하려 애쓰지만 민심과 시류와 문명은 역행할 수는 없다. 

오월의 부산에는 온통 조선통신사의 축제로 떠들썩하다. 
서양인이나 아시아 여러 민족이나 당사국인 일본이이나 구분없이 용두산,남포동,중앙동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북적댄다. 

그들이 이 오래된 문화를 다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또하나의 한류로서 세계로 전파되는데 일조하리라는 생각이다.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키기 위해서 노력 중이며 머지 않아 그 노력이 결실을 보리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조선통신사 예행연습장에서 간단한 블로그 일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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