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 이우근(李佑根)의 일기.
이 글은 1950년 8월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전사한 국군제 3사단 소속 소년병 이우근(李佑根)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일기이다.
8월10일 목요일 쾌청.
어머니,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하나를 사에에 두고 ,10여명은 될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다리가 떨어저 나가고 팔이 떨어저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
더욱이 같은언어와 같은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 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 앉을것 같습니다.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듯 적이 덤벼들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어머니, 어쩌면우리는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테니까요....그럼.
아래사진은 복사 배포 전재를 불허함.
이제 곧 2010년의 6.25가 다가올 것 이며 아직도 그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는것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 이 편지에 나오는 소년병들 중에 많은분들이 지금 살아 있으며 그분들이나 그 가족들도 정규군은 아니지만 국가로부터 적절한 혜택을 받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시 조국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어려운 전쟁으로 버틸때 약 2만여명의 소년병이 참전하여 약 2500여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학도의용군(學徒義勇軍)전사자.
국내학도 1983명,재일학도145명,옹진학도372명,기타4500명.계:약 7,000명.
전쟁동안 우리의 도덕성과 양심은 오직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 때문에 묻혀 인간성까지 상실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분단된 조국은 동족을 적으로 남북이 서로 군사적인 대치를 하는가운데 아직도 해결된것은 아무것도없으며 북은 적화통일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데 점점 그때의 형편없는 군사력때문에 UN의 도움으로 현재에 이르기는 하지만 그때 참담했던 흔적을 부산의 임시수도 기념관에서 조금 볼수 있었으며 그 자료중에서 이우근의 일기를 발풰하여 여기 올린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사자가 나 일수도 있고, 내형제나 내 아들이나 나의 친인척이 주인공이 될수도 있었던 그런 이야기 입니다.
세계 각국은 자기를 지키기위 해서 군사력을 확보하며 적어도 자기를 스스로 방어할수 있도록 노력하며 힘을 키우길 원하는데, 일부 그릇된 생각으로 나는 그 현장에 있길 싫어하고 대신 나라를 지켜주길 바라며 나는 나라를 지키는 현장에 있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는 사람들을 종종 볼때 우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임시수도 기념관을 방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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