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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탐방-진주성 촉석루
서부 경남의 젖줄 남강을 따라서 봄은 북상하여 경남 내륙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봄에 찾은 촉석루 마루에는 책을 든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한가로운 모습이다. 화창한 봄날 진주성 촉석루(晉州矗石樓)에서 오래된 역사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진주성은 유서 깊은 영남의 고성으로 유명하며 가끔 방문하지만, 이 봄에 찾은 진주성은 거대한 하나의 정원으로 새롭게 보인다. 띄엄띄엄 풍광 좋은 위치에 적절히 지어진 성루나 망루 장대들은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 늙은 모습들이 봄꽃들과 함께 포근한 고향 집 대청마루처럼 느껴진다.
 
진주성의 주루(主樓)는 촉석루(矗石樓)이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삼대첩의 하나인 진주 대첩을 김시민이 지휘하던 곳이며, 저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남강 변의 의암(義巖 또는 위암(危巖)에 서린 논개 이야기와 그 사당이 있으며 마지막까지 결사 항전한 진주성 민관군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촉석루에 걸려있는 역사적인 시판들을 보며 아득한 세월 넘어 어느 봄날 진주 목사 문정(文定)공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님이 시를 지어 읊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 시의 저자를 알아보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유호선 박사가 최근 발굴 편찬한 <교은 선생 문집>에서 선생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대 문장가이며 공민왕 23년에 등과해서 성균관 대사성으로부터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으며 태조 실록, 사서절요 편찬인의 한 사람으로서 장일통요를 편찬한 분으로 약력을 소개하고 있다.

[한시문 주해] 
한시는 직해해도 되는 것도 있지만 문자대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 많다. 
광풍제월: 비가 온 뒤의 온화한 바람과 깨끗한 달빛 같은 고상한 인품을 말함. [교은 선생 문집103p]. 
백설양춘곡: 가사가 대단히 고상한 옛날 가곡 이름 -양춘백설.

교은 선생께서 남긴 작품은 동양 최대 분량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몇 분의 사학자님들께서 수집하여 발표된 교은 문집 중에서 유호선님이 제일 많은 분량의 정이오님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정이오(鄭以吾)님의 간결하며 우국 연민의 사상과 불교를 관용하며 시풍에 얽매이지 않은 아름다운 시문들이 발굴된 것만 총 74수이며 선생에 관한 내용은 한국 인물사 연구 제12호에서 볼 수 있다. 휴일을 맞아 한가한 상춘객들 사이에서 나는 또 다른 흔적을 찾아 잠시 더듬어 본다.
 
고려 명문 세족이며 단종 조 충절 사사 충신 충장공 정분님은 위의 교은 선생의 장자이다. 그분의 후손들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이후 충신으로 복권될 때까지 약 300년간[(1453년 계유정난-1746년(영조 22) 복관(復官)된 이후 1758년(영조 34)에 ‘충장(忠莊)’이라는 시호를 받고, 1786년(정조 10)에는 장흥의 충렬사, 1791년(정조 15)에는 장릉 충신단에 배향되는 등 일련의 신원과 복관되고, 1804년(순조 4)에 명정을 받다.)] 역적으로 살아가야 했던 본향 진주 정씨 사람들의 이야기도 여기 걸린 시판 때문에 한참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진주를 위국충절의 도시라고 하는 데는 진주에서 배출한 기라성 같은 충신 열사 문-무인과 임진왜란 때 결사 항전한 7만 민관군들이 보여준 결과가 아닌가 한다. 참고로 진주성 촉석루에 걸린 현판의 시문으로 보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주:한국 향토 문화전자대사전]현재 촉석루에는 현판에 새겨진 9편의 시가 걸려 있다.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에는 훌륭한 시영(詩詠)으로 면재 정을보, 우곡 정이오, 상헌 안진, 경은 설장수, 급암 민사평, 이재 허 선생(불명)등 여섯 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정을보와 정이오의 시가 촉석루에 걸려있다.

9편의 시의 작자는 면재 정을보, 경재 하연, 태계 하진, 우곡(또는. 교은)정이오, 조은 한몽삼 한사 강대수, 만송 강렴, 농포 정문부, 우당 박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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