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5.05 통신사와 당쟁
  2. 2013.05.03 조선통신사 부산축제

조선통신사(2)통신사와 당쟁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200여년간 총12회에 걸처서 한일 양국간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에 파견된 대규모 정부 사절단이다.

 

국가간의 신의를 거듭확인하는 목적이며 부산을 출발한후의 모든경비를 일본막부가 부담하는 초청외교사절단이었다.


구성은 정사,부사,종사관의 삼사이하, 화원,의원,역관,악사등로 구성되었다.

조선수도 한양에서 출발해서 에도까지 순탄할 때 1년반정도 걸리는 긴 여정을 치루는 큰 행사이다.


조선통신사(2)통신사와 당쟁



일본땅에 상륙하게 되면 통신사가 머무는 지역마다 대 환영행사가 일어나고 조선의 관리인 선비들로부터 글씨하나 받으려고 했으며 필담도 주고받으면서 지나가는 고을마다 문화교류가 일어났든 것이다.

통신이란 신의를 기반으로 양국이 전쟁을 방지하고 선린 우호관계를 유지하려 애쓴 하나의 국가간 행사이다.


그 오랜세월동안 통신사는 우여 곡절이 있었으며 대표적으로는 1510년 중종 5년에 삼포왜란이 발생해서 세종 이후 파견되던 사절 왕래가 중지되다가 선조시대에 들어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줄기찬 요청으로 조정은 다시 파견한다.

조선 조정은 1590년 교토로 떠나는 통신사에게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속내를 알아볼 임무를 부여해서 보낸다.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할 의도가 있는지 탐지할 목적을 주어서 파견한 정치적인 특사였든 것이다. 

우리조정은 당시 극심한 당쟁으로 권력이 양분되든 때에 서인 대표 정사 황윤길과 동인 대표 부사 김성일과 역시 동인 허성을 서장관으로하고 정탁을 사은사로 해서 1590년 3월 6일 출발한다. 


정사와 부사는 일본 내에서도 임무를 수행하는데 끝까지 대립해서 서로 충돌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본이 통신사들을 보살피면서 그런 당쟁관계로 대립하는 정-부사를 눈치채지 몯할리 없었을것이다.

아마도 전쟁준비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통신사들에게 자기들의 전쟁준비를 숨겨서 역이용하려 했을 것 아니었겠나는 생각이 든다.

교토로 갖던 통신사는 1591/음력 1월/28일돌아온다. 

그해 3월 이들은 조정이 준 임무를 정사와 부사가 서로 다른 보고를 하게된다.

서인 정사 황윤길과 동인 서장관 허성은 “왜구가 반드시 쳐들어 온다”고 했으며, 

동인부사 김성일은 “침략의 징조도 없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보고해서 민심을 동요시킨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조정은 부사의 의견을 따랏다.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서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국서에서 명을 침략한다는 ‘정명가도’가 있기 때문에 그 발판이 되는 조선 침략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던 터이었다.


조정이 일본의 불침을 믿은 나머지 국방을 소홀히 해서 우리가 전화에 힘쓸린다는 이야기와는 좀 다른생각으로 보면 적어도 조정이 통신사에게 이런 임무를 부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있을지도 모를 일본의침략에 안테나를 세운 것은 확실하고 따라서 방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임진왜란당시 지금으로 치면 4개의 함대사령부(경상 좌-우수영,전라좌-우수영)가 남해바다에 주둔시키고 있었던것을 보면 통신사의 보고와는 상관없이 나름대로 해상방위는 철저히 한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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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화창한 봄날 동래부사는 조선조정의 정사,부사,종사관을 비릇한 400여명의 귀한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해서 약1년반이상이 걸리는 바다건너 오사카 까지의 대 여정을 위해 한양에서 지금부산의 당시 동래부까지 온 여독을 풀어주고 환송연회를 베푼다. 


조선통신사

역사상 귀한 이 행사는 이웃나라와의 통신(신뢰를 전함)을 위해서 약 200년간 국가간의 사절단을 파견하고 일본은 전체비용을 들여서 극진히 환대하는 큰 행사를 치른 역사적인 행사가 바로 조신통신사이다. 


지금 부산에는 곧 출발하는 통신사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그때 동래부의 사람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고증을 거처서 그 오랜 시간 우리가 문화를 전달하던 행사가 오늘에 재현되고 있다. 

지금도 그정도 인원이 움직인다면 큰 규모일 것인데 300녀년전에 400여명의 정부사절단이 움직인다는 것은 치밀하고 대단한 행렬이었을 것임엔 틀림없다. 

길가에 늘어선 일본인은 당시에 우리의 사절단이 입고지나가는 의복이나 신발이나 의관이나 심지어는 말에 부착된 작은 장식까지도 그들에겐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 유행이 될 만큼 강력한 한류의 전달식이기도 했었다. 

지금 우리는 한류가 일본을 힘쓴다고 하지만 사실 한류는 오랜 역사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임나일본이라고 하는 대가야는 사실은 우리의 문화를 일본에 뿌려준 것이라는 것을 전 일본에서 발굴되고 있는 대가야형 토기나 금장유물에서 알 수 있으며, 
백제가 한때 강력한 힘으로 일본에 문화를 전수했으며 이후 백제유민이 일본의 근대화의 주축이었다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알려진일이며 시기는 다르지만 일본에는 도래인 이라고 하는 어정쩡한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를 일깨워준 것은 바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지 하늘에서 도래한 것은 결코 아니지 않는가. 

지금도 한류는 계속해서 강하게 일본을 몰아친다. 그들은 온갖 정치적인 수단으로 한류를 거부하려 애쓰지만 민심과 시류와 문명은 역행할 수는 없다. 

오월의 부산에는 온통 조선통신사의 축제로 떠들썩하다. 
서양인이나 아시아 여러 민족이나 당사국인 일본이이나 구분없이 용두산,남포동,중앙동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북적댄다. 

그들이 이 오래된 문화를 다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또하나의 한류로서 세계로 전파되는데 일조하리라는 생각이다.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키기 위해서 노력 중이며 머지 않아 그 노력이 결실을 보리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조선통신사 예행연습장에서 간단한 블로그 일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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