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5.10 구포왜성(龜浦倭城). (1)
  2. 2012.08.10 죽도 왜성 (1)
  3. 2012.02.15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죽성리 왜성(機張竹城里倭城) (6)


구포왜성(龜浦倭城).

왜성은 왜국이 지은 성이란 말이며 1592년 선조시대  임진왜란이 났을 때 당시 조선을 침공한 왜군들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공격을 위해서 안전한 교두보를 설치한 것이며 양산과 김해 부산을 거점으로  조선에 안전한 근거지로 활용되고 조선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석성이다.

구포 왜성구포 왜성

  주로 그릉지를 앞에두고 얕은 동산을 확보하여 그 상부에 축조하는데 우리나라의 담벼락같은 모습으로 지그자그로 입구를 휘돌아 들어올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왜성은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에 걸처 축조한 성이 그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으며,동남해안 전반에 걸처서 약 30여개가 현존한다.

이 성은 임진왜란때 처음 이곳을 점유한 왜장(倭將)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 일명:こばやかわ たかかげ )와 다찌바나(立花宗茂 일명:たちばな むねしげ)들이 김해의 죽도성(竹島城, 金海城)의 지성(支城)

이 구포 왜성은 현재의 낙동강 구포대교에서 화명동 쪽에 위하고 있는데  산의 높이는 대략 76m 표고로 나오는 언덕 정도에 불과한 정도의 작은 규모이다.

울산으로부터 순천까지 이어지는 해안 벨트의 중간부근인 이 구포왜성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내륙 작전의 요충을 담당하려 한곳으로서 마주보는 김해왜성(죽도왜성),상부로 호포왜성과 함께 전략적인 위치에 있던 성이었다.

구포왜성구포 왜성


지금은 성상에는 아무것도 없고 성곽만 남아있고, 일반인의 사유지와 국유지가 섞인 경작지와 함께 성벽만은 거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1596년에 강화회담으로 잠시 철수했다가 1598년 정유재란때 다시 들어와서 주둔하다가
그 해 5월에 이 왜성을 폐기하고 서생포 왜성으로 이동 합류 했다고 한다. 

왜군이 우리땅을 침탈한 흔적이지만 이 구포왜성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 위치한 기념물 제 6호로 지정되고 있다.

가는 교통은 지하철만 설명한다면 지하철 3호선덕천역에서 하차하여 10번 출구로 나와서 구룡사 쪽으로 가도 되고 4호선 숙등역내려 6번출구로 나와서 낙동탕 쪽으로 가도 되며  4호선 덕천역에서 내려12번 출구로 나와서 락천사쪽이나 구룡사족으로 오르면 됩니다. 거리는 도보  500~ 1Km 정도 된다.

북구 문화빙상센터를 거처서 간다면 예쁜 육교를 이용해서 남해고속도로를 황단하여 구룡사로 갈 수 있다.

구포 왜성구포 왜성

 

구포 왜성구포 왜성

 

구룡사구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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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덕천2동 | 구포왜성(龜浦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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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2012.03.13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포왜성(龜浦倭城).


    왜성은 왜국이 지은 성이란 말이며 1592년 선조시대 임진왜란이 났을 때 당시 조선을 침공한 왜군들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공격을 위해서 안전한 교두보를 설치한 것이며 양산과 김해 부산을 거점으로 조선에 안전한 근거지로 활용되고 조선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석성이다.

죽도 왜성


역사이야기 2012.08.10 21:22

 

우연히 만난 죽도 왜성


부산경남  경마장을 지나서 장유를 거처서 김해를 가는길에 맞은편 주유소 옆의 작은 안내판을 보게됬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 조금 높은 구릉지엔 바람이라도 있을줄 알고 차를 주유소옆에 대고 올라가 봤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는 부산시 강서구 죽림동 823번지 일대이다.


이 작은 구릉지의 언덕은 가락산이며,
해서 가락성이라고도 한다.


사실 죽도 왜성은 구포왜성과 더불어 그 옛날 한반도 남부를 대부분 점령한 왜군이 이순신이 바다를 점령할때 해안 곳곳에 왜성을 쌓고 내륙에서 공격하는 조선군을 맊고  장기전을 위한 포석을 한 흔적들이다.

동남해안선을 따라서 바닷가를 중심으로 방어라인을 구축한 것인데,


이 죽도 왜성은 불과 30여m의 낮은 구릉지에 어렵게 먼곳에서 돌을 운반하여 쌓은 성인데 맞은편 구포 왜성과 함께 낙동강을 중심으로 방어라인을 구축한 것 이다.


사실 왜성을 우리가 복원하고 보존할 필요는 없겠지만 ,

여타 왜성에 비해서 이 죽도 왜성은 훼손이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꼭대기엔 이름모를 분묘들이 존재하고,

성곽이 제1제2제3으로 구성된 환형으로 짐작되나 이미 사라진 형태로서 약간의 존재만 있을뿐이었다.


말 그대로 죽도엔 대나무 숲이 우거저 있고 한여름 풀숲을 혜치고 윙윙거리는 모기떼를 쫓아가며 답사를 마친 나들이 기록을 쓴다.

상부엔 이상한 씨멘트 구덩이도 있는데 그 용도나 이유는 모르겠다.
낙동강 김해 지류인 서낙동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은 카메라가 없었다면 후혜할뻔 했다.




구릉지엔 바람한점 없는 찌는듯한 더위때문에 오래 머물수 었었으며 내려오는길에 6.25 참전용사 추모비를 방문했다.



죽도 왜성



죽도 왜성 위치



서낙동강 풍광


죽도 왜성


죽도 왜성


죽도 왜성에서 본 서낙동강


죽도 왜성


죽도 왜성


죽도 왜성


죽도 왜성


죽도 왜성


죽도 왜성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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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죽성리 왜성(機張竹城里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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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 김해 죽도 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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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walkview.co.kr BlogIcon 워크뷰 2012.08.13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김해에 죽도왜성이 있군요
    한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울산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 일원 (052)229-3730
서생포 왜성:임진왜란 초인 1592년(선조 25년) 7월부터 1593년(선조 26년)에 걸쳐 일본장수 가토오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축조했으며,
죽도왜성과 부산왜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해서 봉화성(烽火城)이라고도 부른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조선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말의 일본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일본식 평산성이다. 본성과 지성으로 구분되어 구획되어 있다. 성벽은 외성(外城)의 경우 바깥쪽에만 돌로 쌓는 내탁식(內托式)으로 하고, 내성(內城)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하였으며, 기울기는 지면에서 60˚내외이다.
서생포왜성은 16세기 말기의 일본 성곽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러한 일본식 성곽은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의 성곽 축조에도 일시 응용된 바 있다. 

본성:
모성(母城) 혹은 내성(內城)이라고도 구분한다.
회야강 강구의 작은 포구를 끼고 해발 133m 고지의 산정(山頂)에 혼마루를 축조하고 아래로 동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복잡한 구조의 아래로 니노마루, 산노마루를 겹으로 두르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약 6m의 노보리이시가키를 계단식으로 축조하여 본성과 연결해 놓고 있다.[2]이것은 각 구루와에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 아래로 산 아래까지 점차 길고 넓어지는 지성(支城)을 배치하였다.
본성에는 장군수와 천수각이 있다. 그리고 북문과 서문도 본성에 있다. 장군수는 옛날에 이곳에 머물렀던 일본군 장수들을 위한 우물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주위 성벽이 파괴되면서 우물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천수각:
천수각은 일본의 성에서 상징적인 건물로써 성곽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평소에는 왜장이 머물고 전쟁 때는 전쟁을 지휘하던 곳이다.
현재  돌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데 천수의 흔적은 없지만 돌계단은 아직 옛 모습 그대로 있다.
천수에서 주위를 보면 산이 있는 서쪽을 제외하고는 모든 방향이 트여있어 좋은 전략적 위치라는것을 알 수 있다.

성문:
서문은 성 전체로 보면 남쪽 방향이다. 지형적으로 보면 이 문을 나서면 해안으로 갈 수 있어 일본군이 가장 많이 드나들었을 문으로 생각된다.
기록을 보면 이 성에는 문이 여럿 있는데 오직 서문만 살아 나올 수 있는 문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이 지역이 서생면이 된 것도 이 문과 연결된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북문은 '죽음의 문'으로 불린다. 북문은 천수각 바로 위에 있다. 그런데 이문은 문의 이름만 있지 실제로 문은 없다. 따라서 옛날에 서생포왜성에 들어왔던 적병 중 이곳이 문인 줄 알고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고하여 '죽음의 문'으로 통한다.
지성:자성(子城) 혹은 외성(外城)이라고도 한다. 지성에서 본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발 니노마루와 산노마루를 지나야 한다. 니노마루와 산노마루가 있는 곳에도 해자가 있어 적이 쉽게 접근을 못하게 되어 있다. 아울러 이 성은 동서로 또 다른 성과 연결시켜 놓았다.

창표당:창표당은 서생포왜성에서 일본군과 전쟁 중 전사를 한 우리 장병들을 위해 선조 32년(1599년)에 세운 사당이다. 창건 당시의 창표당에는 위패를 봉인한 본당 등 건물이 여럿 존재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배 밭에 울산시가 세워 놓은 표지판만 있을뿐이다.


동제당:
동제당은 서생포왜성을 점령할 때 공을 세웠던 명나라 장군 마귀의 위패를 모신곳이다. 또 성 동문에는 서생포왜성에서 전투를 벌였던 명나라 장군 편갈송이 정전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귀화한 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낸거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기념비를 세워놓고 관리를 하고 있다.

해자:
성벽 밖에는 2, 3중으로 해자를 둘렀다. 성곽의 전체 면적이 해자를 포함하여 46,000평에 이르고 해자를 제외한 성 외곽부의 길이가 약 2.5km, 평면상의 직선 거리는 동서 약 870m, 남 북 약 370m에 달해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가장 웅장하다. 성의 내외부에는 다수의 우물터가 확인된다.


임진왜란
가토 기요마사
문서에 서생포왜성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1593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서(朱印狀)에 의한 축성명령이며, 같은 해 5월 히데요시 명령서에 성 이름을 알 수 없는 성의 수비에 가토 기요마사, 그 수비장에 사가라 나가쓰네(相良長海)가 명령되어 있는데, 한성(서울)에서 퇴각한 가토 기요마사는 그대로 서생포에 들어가 축성을 개시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구체적인 일시는 알 수 없지만, 1593년에 본격적인 축성이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같은해 9월의 히데요시의 명령서에는 "강화에 방심하지 말고 성을 견고히 하라"고 명령되어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명령서로 보아 서생포왜성은 가토 기요마사의 손에 의해 보이는 성의 원형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추정된다.
1594년에는 평화교섭이 활발히 진전되어 4월에 서생포왜성에서 사명대사와 가토 기요마사가 회견을 하였다. 1595년 6월 28일자 히데요시의 명령서에 의해 부산왜성, 죽도왜성, 가덕도왜성 등의 몇 개를 남기고 여러 장수를 순차 일본으로 귀국시켰는데, 이때 가토 기요마사는 서생포왜성에서 기장의 죽성리왜성으로 옮겼고, 이때부터 한때 폐성이 되었다.
1596년 히데요시의 명에 의해 가토 기요마사는 귀국하여 후시미(伏見)로 향했는데, 같은 해 9월 평화교섭이 결렬되자, 1597년 1월 가토 기요마사는 다시 1번대가 되어 약 10,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입, 기장과 양산을 거쳐 한때 폐성으로 되어 있던 서생포왜성에 입성했다.[4]
이 이후 가토 기요마사는 이 방면의 군사적 책임자가 되고, 같은 해 2월 21일자 히데요시 명령서에 수비 책임자로 아사노 요시나가(浅野幸長)에게 3,000명의 재번을 명령하고 있다. 같은해 3월 가토 기요마사는 서생포왜성에서 사명대사와 회담을 했다. 같은 해 7월 21일경에 아사노 요시나가가 서생포왜성에 입성하고, 가토 기요마사는 북위작전을 위해 출진하고, 같은 해 9월 아사노 요시나가는 혼마루의 토목공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10월말 가토 기요마사는 서생포왜성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던 서생포에서 북동쪽으로 약 35km, 떨어진 울산에 최전선인 울산왜성이 생기면 일본군의 점령지 수비는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았는데, 같은 해 11월 10일자 히데요시의 명령서에 의해 축성된 것이 울산왜성으로, 12월 중순 이후 성의 외곽부분이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 울산왜성은 갑자기 조·명 연합군의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1597년 12월 22일부터 1598년 1월 4일까지 약 보름동안 비참하고 처절한 울산왜성에서의 농성전이 벌어진 것이다. 같은 해 1월 22일자 히데요시의 명령서에 의해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왜성의 수비만 전념케 하고, 서생포왜성에는 모리 가쓰노부, 시마즈 다다토모, 이토 스케타카, 다카하시 모토타네, 아카즈키 타네나가, 사가라 나가쓰네 등 여러 장수가 입성하여 수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1598년 5월 22일자 히데요시의 명령서에 의해 지금까지 구포왜성에 있던 구로다 나가마사가 서생포왜성에 수비담당자가 되어, 이후 폐성까지 나가마사가 지키고 있었다. 같은 해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인해 더 이상 이 전쟁이 무의미하게 되었다. 10월 15일자 고다이로(五大老)가 나가마사 앞으로 보낸 명령서에서 "울산이 공격을 당할 때는 서생포를 단단히 지킬 것, 비상시에는 서생포성을 버리고 부산성으로 빠져나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 10월 27일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서에는 "기요마사와 협의하여, 서생포성을 퇴각하여 부산성으로 입성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11월 24일에 기요마사와 나가마사 등이 부산왜성에서 일본으로 귀국길에 오르자, 명나라의 제독 마귀가 울산왜성과 서생포왜성에 입성. 점령했다.

서생포진성: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군대를 둘로 나누어 서생포와 부산의 다대포에 동시에 쳐들어와 서생포에는 서생포 만호진성(西生浦萬戶鎭城)에 만호(萬戶)를 두었으나, 이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졌다.

임진왜란 후, 서생포 만호진성의 수군만호는 수군동첨절제사(水軍同僉節制使)로 승격되었으나, 일본군이 축조한 서생포왜성의 성곽이 견고하다 하여 수군동첨절제사를 인근의 서생포왜성으로 이동하게된다. 이래 서생포 만호진성은 폐성이 되고, 서생포왜성은 대진(大鎭)으로 승격되어 1895년(고종 32)까지 서생포왜성은 조선의 서생포진성(西生浦鎭城)으로 사용되었다.

1872년에 제작된 『울산서생진지도』(蔚山西生鎭地圖)를 보면 서생포왜성의 외성(外城) 내부의 관청건물, 그리고 주변 지역의 마을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서생포진성의 남문 근처에는 시장도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고 전선이 정박해 있는 수군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서생포 왜성의 외성이 대촌(大村)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글내용: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서생포왜성

 


기장 죽성리 왜성(機張竹城里倭城)
행정구역상 위치 :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603 일원
시지정기념물지정일 : 1999년 3월 9일지정번호 : 제 48호 
 
죽성리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축성한 것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에 왜군이 조선군과 명나라군의  연합군으로 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남해안 일대에
장기간 주둔할 목적으로 남해안을 벨트로 연결하며 견고하게 쌓은 성들 중  하나이다.

1594년 선조 27년 봄 왜군은 전남 여수에서 울산에 이르는 우리나라 동남해안 일대에 일제이 성을 쌓았다.
이 성들을 근거지로 삼고 조선과의 장기전을 위한 교두보로 이용했다.



왜군은 1594년 5월 왜장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이하 20여명의 장수가 서로 협력해서 축성했는데,
이 죽성리왜성도 그때 쌓은 왜성 중의 하나이다.

왜성들은 강이나 바다에 근접한 얕은 구릉지가 바다에 연한 장소를 택했으며,
보급선의 왕래에 유리한 포구가 있는곳을 택하고 있다.

이성 또한  기장군 죽성마을 뒷편으로서  현재의 두모포 해안이 가까이 있음을 알수 있다.
이성의 크기는 구릉지에 돌출된 작은 산 정상을 택했으며 요충지의 둘레는 약 1kM이고 성벽 높이는 약 4m 정도 이며 3단으로 축조 된 석축(돌담)성이다.

죽성리 왜성은 일본에서 부산포성이라고 부르는 증산왜성과 형태가 비슷한데 일본에서는 기장성이라고 한다.

울주군에 있는 서생포성(西生浦城)과 울산의 학성(鶴城), 그리고 증산왜성을 연결하는 방어벨트 중에 가운데부분으로 요충지에 자리 한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탐방해 보면 성곽의 주요 부분은 지금도 잘 남아 있다.
다만 평지에 가까운 외곽 부분은 밭으로 일구어저 경작되고 있으며 아랫부분은 민가에 의해 많이 점유되고 있다.
죽성리왜성은 인근 두모포진성과 함께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어서 우리나라 축성법과 일본식 축성법을 비교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탐방하면서 느낀점은 진입로가 지그재그로 이어지며 길위에 성곽에서 내려다보며 공격할수 있도록 층층 계단을 돌아 들어가는 형태로서 ,
지금처럼 곡사포를 쏘지 않는한 공격이 아주 힘들게 구성되어 있다.
소총만으로 공격한다면 지금도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장 죽성리 왜성(機張竹城里倭城)





기장 진아항

진하 해안
 

기장 죽성리 왜성(機張竹城里倭城)

  서생포왜성의 천수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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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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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2012.02.16 0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機張竹城里倭城,毛利輝元,黑田長政,구로다나가마사,기장죽성리왜성,기장성,데루모토,부산포성,서생포성,왜성,임진왜란,정유재란,죽성리왜성,증산왜성

  2. Favicon of https://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2012.02.16 05: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장 죽성리 왜성(機張竹城里倭城)
    행정구역상 위치 :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603 일원
    시지정기념물지정일 : 1999년 3월 9일지정번호 : 제 48호

    죽성리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축성한 것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에 왜군이 조선군과 명나라군의 연합군으로 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남해안 일대에
    장기간 주둔할 목적으로 남해안을 벨트로 연결하며 견고하게 쌓은 성들 중 하나이다.

    1594년 선조 27년 봄 왜군은 전남 여수에서 울산에 이르는 우리나라 동남해안 일대에 일제이 성을 쌓았다.
    이 성들을 근거지로 삼고 조선과의 장기전을 위한 교두보로 이용했다.

  3. Favicon of https://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2012.02.16 05: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장 죽성리 왜성(機張竹城里倭城)
    행정구역상 위치 :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603 일원
    시지정기념물지정일 : 1999년 3월 9일지정번호 : 제 48호

    죽성리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축성한 것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에 왜군이 조선군과 명나라군의 연합군으로 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남해안 일대에
    장기간 주둔할 목적으로 남해안을 벨트로 연결하며 견고하게 쌓은 성들 중 하나이다.

    1594년 선조 27년 봄 왜군은 전남 여수에서 울산에 이르는 우리나라 동남해안 일대에 일제이 성을 쌓았다.
    이 성들을 근거지로 삼고 조선과의 장기전을 위한 교두보로 이용했다.

  4. Favicon of https://dragonphoto.tistory.com BlogIcon 드래곤포토 2012.02.16 2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장에도 왜성이 있었군요
    사진으로 보면 서생포왜성과 흡사하네요 ^^

  5. Favicon of http://www.walkview.co.kr BlogIcon 워크뷰 2012.02.18 0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성리 왜성 다녀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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