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도전으로 보는 그때의 사정

- 정도전을 보며 생각해 보는 고려말의 진실 -


500년 역사를 마감하는 조짐이 이번회에서 무르익어간다.
정치인의 능력으로서 해결할수 없을만큼 주변정세와 내부사정이 어려운 시기였음을 볼 수 있다.

정도전 23-24회에서 정도전(조재현)이 이인임(박영규)를 무너뜨리는데  국한되할수는 없다.

정도전이 이성계와함께 너무 큰 역사의 방향을 바꿔놀았기 때문이다.

이제 한때의 인물 
이인임(박영규)은 사라지지만 그의 뛰어난 연기력은 정도전의 카리스마 보다 여유롭게 보인다.  


최영(서인석)은 약간 단순한 무장으로 비춰지곤 있지만 당대의 호걸이며 만고의 충신임은 틀림없으마 현명한 판단을 하는지에대한 의문은 남는다.

거자필반(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은 한낱 종이위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리가 없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현명하며 미래를 위해 어떤 결정이 가장 적절 했을지도 판단하기가 사실 어렵다.


당시 과연 무력으로 명나라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후속 공격도 감당할만큼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느냐가 가장 핵심이다.

과연 세운지 20년밖에안된 명나라가 뛰어난 정치력이 있었는지 아니면 금방세운 나라의 싱싱한 군사력이 살아 있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곧 정도전과 이성계의 행보는 역사가 말하는 내용으로 전개 되겠지만 ,

아쉬움으로 남는 최영의 명나라 공격이 성공했으면하는 바램은 남는것이 사실이지만 ,

정몽주의 말처럼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너무 위험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르는것은 사실이다. 


정도전으로 보는 고려말의 진실정도전으로 보는 고려말의 진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정도전이니까 정도전의 머리속에서 역사가 쓰여진것이지만,
행동하는 무장 이성계와 최영이 과연 누가 더 이땅의 미래를 위해서 잘한것인지는 아직도 명확한 판단을 내릴수는 없는 것이다.
과연 최영이 무모한 공격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일거에 명나라를 제합했을지에 대한 정답은 아직 없다.
KBS가 이 부분을 조금 어필해 주면 좋을텐데..


그래서 역사는 후학이 다 밝힌다는 말이 틀린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먼 훗날 밝혀 지는 것이라면 과연 그때 고려가 망하지 않고 최영이 명나라를 혼내주어 다시는 명나라에 사대하지 않고 강력한 고려의 위상을 드높이고 과거 고구려의 위용까지는 아니라도 중원을 넘볼만큼 큰 나라로 발전할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남는다.

  






Posted by 강물처럼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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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살아 있는 최영장군

황금을 돌같이 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떠난 최영장군은 영원히 떠날 수 없어 아직도 부산 앞 바다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백수최만호(白首崔萬戶) 최영장군은 부산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사당은  부산의 감만동,영도,수영동,자성대에 있으며 이부근 사람들은 수호신처럼 장군의 영을 모시면서 신앙으로 승화되어 사당에 제사를 올리고 있으며 자성대 산책로 위에 있는 그분의 작은 사당 앞에 서는 지나는 사람들이 합장하며 예를 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주:백수최만호(白首崔萬戶)- 만호는 큰 벼슬은 아니지만 만호벼슬로 크게 승리해서 왜군을 벌벌 떨게 한 홍산 전투의 위상 때문에 백수 최만호를 호칭하는 것입니다.)


도심 속의 작은 동산 자성대의 짙은 수림 속에 어쩌면 초라하게 어쩌면 검소하게 보이는 작은 그분의 비각(사당)은 왜성에 모셔지고 있어서 저세상에서도 왜군을 무찌르는지 모릅니다. 

자성대는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를 한 부산진성 지성이며 왜군이 조선을 점령하고 왜성으로 덧씌워 지어서 지금은 큰틀의 왜성만 남아있습니다.  


많은 복원으로 우리의 옛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자성대이지만 돌로 쌓은 성곽은 전형적인 왜성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역사는 언제 까지나 유구히 흐르지만 지나간 세월들 속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그분의 영혼은 부산을 결코 떠날 수 없습니다.


최영장군 사당(비각)죽어서도 바다를 지키는 최영장군


조선시대 4대수군절도사영이 남해안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만큼 남해바다의 국방이 중요하단 증거이며 그중에서 좌수영수군절도사영이 있던 곳이 부산이며 지금도 대한해군의 부산해군작전사령부가 있으며 이순신급 대한민국 구축함 최영함이 그분의 이름을 달고 아직도 부산 앞 바다를 누비고 있습니다.

최영장군은 일편단심 구국정신으로 한평생을 살다 육신은 떠났지만 그의 우국충혼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으며 가끔씩은 자성대 산책로에서 만나고 위풍도 당당하게 물살을 가르며 오륙도 앞바다를 지나가는 우리구축함 최영함의 펄럭이는 깃발에서도 만나며,  만리 타국의 아덴만 에서도 최영장군은 전광석화같은 전과를 올리면서 조국의 깃발아래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숱한 오류를 남기며 국민을 실망시키는 부끄러운 정치적 결과는 후세에 역사의 심판을 받겠지만 600년도 더된 최영장군은 오늘도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한여름 짙은 숲속을 산책하다 만난 최영장군의 검소하게 작은 사당 앞 마당에서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면서 국내 외를 막론하고 바다 때문에 신경 쓰이는 요새 최영장군의 우국충심이 그리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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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주 최(崔)씨 영(瑩)은 고려 충숙왕3년 1316년에 태어나서 1388년에 72세의 나이로 떠난 고려 말기의 정치인이며 장군이다.

고려때 무관정치가 성했을 때 임으로 최영은 무관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정치인이지만 후세인들은 최영을  정치적 벼슬 직함 보다는 무관 최영장군으로 부르고 있다. 최영(崔瑩)의 시호는 무민(武愍)이며 고려 조정의 중대광판문하사동원부원군(重大匡判門下事東原府院君) 최원직(崔元直)의 아들이다.

사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교훈은 최원직(崔元直)이 아들에게 당부한 말이며 최영은 평생 그 말을 되새기며 나라에 충성하고 검소한 사람으로 산 것이다.

 

유교 사대부와 함께 한 이성계와 대립했으며 명나라가 서북면을 요구하여 벌어진 요동정벌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반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는 군관으로 출사하여 우달치에 임명된 뒤 관직은 육도 도순찰사, 양광, 전라도 왜적 체복사 등을 거쳐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약력:1374년에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난을 진압, 1376년(우왕 2)에 왜구의 침략 때 육군으로 논산군 연산의 개태사(開泰寺)로 올라오는 왜구를 홍산(鴻山)에서 대승.- 철원 부원군(鐵原府院君)에 봉작됨, 왜구와 홍건적을 여러번 격퇴한후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됨. 






Posted by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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