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씩 멈추시면 안될까요....

현재를 보는 역사 이야기: 무오사화~1498~갑자사화~1504~로부터 ~2011년
역사가 현재와 같을수는 없지만 참고가 될만한 것 들은 참 많습니다.
꼭 내가 해야 잘 한다고 생각지 마시고 남도 잘 할수 있다고 한번씩 생각해 보세요.

남인,북인, 노론,소론,


외척파,친척파,임금파,왕자파,
차세대파,현재파,적군파,아군파,
매국파,수국파,실내파,야외파,
촛불파,바람파,정치파,경제파,
현장파,책상파

일반인 들 에겐  이권다툼 같은 느낌으로 와 닫는 그런 것 도 있지요 ..
약-그룹,의-그룹,

Or 
최근에는 일반인들 한테는 피부로 와 닫지도 않고 이해 하기도 어려운 그런 것도 있지요. 

검-그룹,형-그룹,

Or
국가파,개인파,

Or 
중앙파,지방파,

Or
공천파,세력파,

힘싸움 같은거 해 봐야 다 그밥이고 결국 피보는건 후손 들 이고 득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요새는 독똑한 중생들이 하는 모습이 알-부-예-공님도 놀래실 일도 많지만 ....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덩달아 따라 다니면서 춤추는 바람에 골목까지 시끄러운데,
좀 아시는 분 들도 입을 꽉 다무신다.... 

대다수 서민들은 먹고 살기 하는데도 바쁜데,
안듣고 안볼래도 도처에서 보이고 나는 소리가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자꾸 되니 안되니 하니까 어떤게 진짠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봐도 미련한 하수로서 둘다 맞는 말 같은데 항상 생각이 다른데 있는 양쪽 이 서로 우기니까 답도 모르겠다.
차라리 모르는게 좋겠는데 안들을수도 없고 짜증도 난다.

당연히 다아..
잘 할려고 그러시겠지요 .....

이제 해가 바뀌려 하는데 ,
이쯤 해서 좀 쉬어 가면서 정리도 좀 하시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Posted by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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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으로 보는 인조대왕
용감한 인조대왕 삼전도편-1
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 

조선시대에서 가장혹독한 시련을격은 인조대왕의 삼전도의 치욕이 날때까지의 기록
의 원본을 살펴본다.

인조(祖) 에 자세히 기록된 자료가 명확한 우리의 조선제16대 왕이다.

인조실록은 고활자본(). 50권 50책. 규장각 도서. 1653년(효종 4) 6월에 중추부영사() 이경여(輿) 등이 찬수()하였고, 춘추관()에서 편집하였다. 표제는 인조대왕실록()이다.

실록으로 보는 인조는 27년이란 어쩌면 짧은 재위기간에 큰 국가적 위란을 격었고 중요한 정세변화를 잘못 감지했거나 유연하지 몯한 고집으로 정치를 펴서 종묘사직을 풍전등화로 내몰게된 연유는 있겟지만  우수한 군사적 지략 없이 대병과 맞싸우기도 하는 대란시대의 왕이었다고 생각한다.

總序

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 字和伯, 小字天胤, 在位二十七年, 壽五十五, 葬長陵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A면
【영인본】 33책 501면
【분류】 *역사-편사(編史) / *왕실-국왕(國王) / *변란-정변(政變)

인조실록
 

   ○ 仁祖實錄 元年(1623年)
○ 仁祖實錄 二年(1624年)



 

인조가 재위중 격은  가슴아픈 사건은 삼전도의 치욕인데 이부분을  실록에서 사실대로 확인한다.

1.청나라 군대가 움직인다.(금나라가 국호를바꾼 청)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1번째일기
능한 산성 대장 김진 등이 금나라 군대의 동태를 치계하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2번째일기
삼공이 박난영·강홍립의 자손들을 벌주도록 아뢰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3번째일기
병조가 변군으로 하여금 봉화를 강도까지 연결토록 할 것을 청하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4번째일기
승지 이여황이 피살된 의주 부윤·판관에게 포증하도록 아뢰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5번째일기
비변사가 호남과 영남의 연로에 보발을 설치할 것을 청하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6번째일기
헌부가 인심을 수습하는 글, 청나라 군의 동태 파악 등에 대해 아뢰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7번째일기
광해를 교동으로 옮기도록 하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8번째일기
보덕 윤지경이 임진강을 지킬 군사를 청하고 피난하지 말 것을 아뢰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7번째기사
광해를 교동으로 옮기도록 하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8번째일기
보덕 윤지경이 임진강을 지킬 군사를 청하고 피난하지 말 것을 아뢰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9번째일기
청나라 군이 출발했다는 장계를 보고 그 대책을 논의하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10번째일기
정주 목사 김진 등이 능한 산성에서 금나라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仁祖 15卷, 5年(1627 丁卯 / 명 천계(天啓) 7年) 1月 20日(戊子) 11번째일기
유배시킨 죄인 유대건 등 35인을 석방하다

1627년1월20일 인조실록에는 총 11건의 정사를 본 기록이 있는데,그중 6번채 일기가
 청의 외침에대한 기록 즉 군사동향을 기록한다.

인조 15권, 5년(1627 정묘 / 명 천계(天啓) 7년) 1월 20일(무자) 6번째일기
내용
헌부가 인심을 수습하는 글,
청나라 군의 동태 파악 등에 대해 아뢰다 

헌부가 아뢰기를,

“신들은 성덕에 누가 되고 인정에 거슬리는 것으로써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스스로 아는 체하고 남의 좋은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언로가 막혔고, 궁중이 엄정하지 않아서 정사가 혹 측근에 미쳤으며, 훈신이 농민을 모점(冒占)하여 원망이 벌떼처럼 일어났고, 내수(內需)는 사장(私藏)을 파기하지 않아서 여러 백성들이 남다른 고통을 겪었습니다. 호패를 시행한 일에 있어서는 인심이 이미 여기서 떠났고 기타 갖가지 정책에 실수를 범하여 원망을 초래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신다면 또한 반드시 두렵게 여겨 경계하실 것입니다.

영무(靈武)427) 의 애통조(哀痛詔)와 흥원(興元)428) 이 자기 자신을 죄책한 것은 인심을 수습하는 데 관계되는 바가 컸습니다. 조속히 몇 줄의 서찰을 내리시어 중외에 효유하여 회오(悔悟)하는 뜻을 보이소서.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우니 수신(帥臣)은 마땅히 밤길을 달려가서 방어책을 강구해야 할 터인데 장만은 분부를 받은 지 이틀 만에 비로소 벽제(碧蹄)를 떠났습니다. 하유해서 계칙하여 급히 전진하도록 하소서. 적병이 정주(定州)에 주둔한 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는데 정탐해 올리는 보고가 매우 드무니, 체찰사와 양서 감사가 있는 곳에 따로 선전관을 보내 하유하여 단단히 타이르도록 하시고, 파발과 봉수는 그대로 적간하도록 하소서.

관원이 많으면 일을 실패하는 것은 평상시에도 오히려 그러합니다. 더구나 이와같은 위급한 상황이겠습니까. 지금 분부를 받고 밖으로 나간 이들이 매우 많으니, 도체부 이외에 기타의 종사관들은 한 명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소서. 마전(麻田)· 적성(積城)· 연천(漣川) 세 고을의 수령들은 삭녕(朔寧)의 예에 따라서 아울러 무관으로 골라 보내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종사관은 이미 대동하고 있으니 감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수령의 일은 비국으로 하여금 헤아려 처치토록 하라. 나 자신을 죄책하는 글을 이미 제도에 하송하였다.” 하였다.

실록원분:

○憲府啓曰: “臣等請以累聖德、拂人情者言之。 自廣狹人, 言路壅蔽, 宮闈不嚴, 政或及昵。 勳臣冒占田民, 而怨讟朋興; 內需不罷私藏, 而齊民偏苦。 至於號牌之擧, 人心已離, 其他種種失政招怨之道, 不一而足。 伏想殿下, 念及於此, 亦必瞿然警惕也。 靈武之哀痛, 興元之罪己, 其有關於收拾人心者大矣。 請亟下十行明札, 曉諭中外, 以示悔悟之意。 國勢岌岌, 爲帥臣者, 所當星夜以行, 規畫捍禦, 而張晩受命二日, 始離碧蹄。 請下諭戒飭, 急急前進。 賊兵留屯定州, 今已累日, 而探報甚罕。 體察使及兩西監司處, 別遣宣傳官, 下諭申飭, 擺撥、烽燧, 仍令摘奸。 官多敗事, 在平時尙然, 況此危急之秋乎? 卽今奉命出使者甚多, 請都體府外, 其他從事官, 無過一員。 麻田、積城、漣川三邑守令, 依朔、寧例, 竝以武弁擇送。” 答曰: “依啓。 從事官業已帶率似難減省。 守令事, 令備局量處焉。 罪己之書, 旣已下送諸道矣。”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11장 B면,영인본 34책 161면,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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