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신라유적 탐방기(7) 하늘에 떠있는석탑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 南山茸長寺谷三層石塔).

금오산(金鰲山468m) 정상에서 휴식을 한후 하산하는 길은 순환도로와 잠시 겹치는 좋은길을 걷으르며 하산하다가 곧 급경사를 만난다.바위틈으로 연결된 난코스는 작은산이라고 함부로 깔볼 수 없는 몇군데의 밧줄을 타고 하강한다.

지금내려가는 
용장골은 남산의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의 여러 골짜기 중에서 가장큰 계곡이며 이 계곡에는 용장사지를 비릇해서 18곳의 사찰터와 7기의 석탑과 5위의 불상이 있다.

정상에서 약 400m아레에 용장사지가 있지만 아직 산 8부능선부근이다.바위계곡을 빠저나오면 허공에 솟아있는 삼층석탑을 만나는데 남산의 여러 봉우리와 함께 하늘에 우뚝선 장관을 연출한다.

석탑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 南山茸長寺谷三層石塔)


단아한 모습으로 바위난간 끝에 자리잡고 천년 풍상을 견디며 서라벌을 내려다 보는 이 석탑은 그 제작을 상상하면 미스테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석공들은 이렇게 높은 산정 바위난간에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석탑을 쌓을 수 있었는지 상상이 안된다.

이 탑은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 南山茸長寺谷三層石塔)이라는 긴이름을 가지고 있다. 안내판의 영문표기를 보면 Kyeongju NamsanYeongjangsagoksamcheungseoktap 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과연 외국인이나 영어권의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철자 표기인지도 모르겠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6호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해정구역 장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 1-1번지이다.

규모는 4.42m의 높이이며 화강암으로 다듬어진 통일신라시대의 미술품으로서 뛰어난 문화 유적이다.

이곳에서 좌우를 살펴 보면 남산의 산봉우리들의 전부를 볼 수 있는 위치이며 산정가까이 돌출된 큰 바위 덩어리가 아스라이 벼랑을 이루는 곳에다 탑을 우뚝 세운 것 이다.
이 탑은 1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갖추고 장식이 없으며 형식이 단아하지만 아름다운 신라 말기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이 탑을 조성한 방식은 특이한데 산의 암봉 전체를 탑의 기단으로 삼고 탑을 샇은 것으로 유명하다.불탑이 무언으로 설하는 무한적집(無限積集)이나 공덕적취(功德積聚) 등의 사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 南山茸長寺谷三層石塔)


이 불탑의 기단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설명되는 수미산(須彌山)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며 불가의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한 불탑 자체를 우주의 축(軸)으로 생각하는데 지리산 법계사(法界寺)삼층석탑, 충북 영동의 영국사(寧國寺) 망탑봉(望塔峰)삼층석탑과 같이 고려시대에 비보사상을 기반으로 조성된 석탑들은 이 용장사석탑을 필두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일부 붕괴되어 있는 것을 1922년에 재건 했으며  2층옥신 윗면에서 15.2cm×3.1cm의 사리공이 확인된다.

지금까지 이 산을 오르면서 보아온 뛰어난 문화유산들이 불상인었는데 이제는 하늘에 닿아있는 듯 아스라히 바위벼랑끝에 서 있는 이 아름다운 석탑은 볼수록 감탄스럽다.

남산의 크고작은 산봉우리 가운데 하나의 봉우리로 어우러저 자연스럽게 잘 조화된 위치에 서 있는 이 아름다운 석조물은 보는순간 경외심을 자아 내고도 남는다.




[역사이야기] - 신라 유적 탐방기(2) 머리 없는 불상

[역사이야기/역사,시사,설화,] - 신라 유적 탐방기(3) 암벽에 새긴 선각화

[유네스코-문화유산/한국문화유산] - 신라 유적 탐방기(4) 위풍 당당한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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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유적 탐방기(3) 암벽에 새긴 선각화


냉골(冷谷)의 목 없는 여래좌상을 지나서 금오산의 약 4부 능선쯤의 높이에 있는 보기 드문 바위그림을 만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1호인 이 선각 육존불은 보통 접할 수 없는 불화로서 바위에 불상을 조각하지 않고 그림을 선으로만 각인한 작품이다. 

그림 자체가 모래밭에 그린 것처럼 윤곽이 부드럽고 전체적인 그림이 아름답게 표현된 미술품이다. 이 바위그림은 삼존불이 나란히 두 개로 옆에 삼존선각불이 하나 더 새겨져 있어서 옆의 그림을 합해서 육존불이라고 한다. 만약 바위의 자연적으로 찢겨진 흠이 없는 그냥 깨끗한 평면에 그려진 것으로 상상하며 바라보면 사실 그림기법이 현대인들이 그린 것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묘사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신라 유적 탐방기(3) 암벽에 새긴 선각화



그림에 나타난 얼굴의 표정이나 모양이 남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봐왔던 삼존 불과는 그 형상이 전혀 다르다. 그림이 그려진 바위의 크기는 대략 높이 4m 정도의 두 개인데 폭은 앞의 바위는 4m 정도이고 뒤에 있는 것은 7m 정도로서 뒤에 것이 더 넓다. 제작할 때 당연히 정으로 쪼아서 홈을 파서 만들었겠지만 쪼아서 만든 조각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부드러운 선감을 느낄 수 있다. 꼭 현대인이 사용하는 자동기계를 사용해서 파낸 것 같다. 

이 두 블록의 마애삼존 선각불은 만든 시대나 조각자 등의 내용은 모른다. 관계 자료들을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 조각은 만든 기법이 정교한 선각이며 표현력이 부드럽고 우수해서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불상은 앞쪽 바위의 삼존불에서 가운데 본존은 서 있고 좌우에 협시 보살은 반쯤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본존불의 높이는 2.65m, 협시 보살의 높이는 1.8m 정도이다. 손모습이 현대 제작된 불상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석가모니불로 보이며 오른손을 올려 들고 왼손을 배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협시 불의 보살은 무릎을 반쯤 꿇고 본존을 향해 예를 갖추어 무엇을 공양하는 자세로 보이는데 협시 보살이 공양하는 내용물은 그림이 오래되어 분명히 알 수는 없다.
 
뒤편 선각 삼존불은 앞쪽 삼존 불과는 반대로 본존은 앉은 자세이고 양 협시 보살이 서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은 좌우의 협시 보살이 평온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보며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기는 본존불의 높이는 2.4m, 양쪽의 협시 보살 높이는 2.6m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불상의 머리 뒤쪽에는 음각으로 된 두광과 신광을 나타낸 것이 뚜렷하게 남아있고 아래쪽에는 여느 불상처럼 연화대좌를 조각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필자가 답사할 때는 습기가 좀 있는 계절이며 바위색깔도 밝지는 않은 상태였으나 모든 선각들이 뚜렷이 보였다. 이 계곡이 냉골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숲 계곡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바위 뒤쪽 부분에는 법당이나 요사채를 세웠든 흔적으로 보이는 바위벽의 구멍이 남아 있고 바위의 윗부분에는 홈을 길게 파서 빗물이 직접 마애불 위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배수로를 만들어 놓은 흔적도 보인다.

돌에 파놓은 물골 바로 앞에 보호 처마를 만든 것으로 보이는 보호대를 씌웠던 작은 바위홈이 양쪽에 있다. 여기를 방문하기 전에 문화재청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보고 익히고 왔지만 백문이 불여 일견 (百聞不如一見)이라고 했던 말처럼 생생한 작품을 직접 감상하며 감동받을 수 있었다. 이 불상을 지나서부터는 산의 경사도가 좀 더 가파르기도 해서 여기서 잠깐 식음료를 마시며 일차 휴식도 한 곳이다. 
 


<시니어리포터 정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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