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이야기

(42)
조선통신사 부산축제 오월의 화창한 봄날 동래부사는 조선조정의 정사,부사,종사관을 비릇한 400여명의 귀한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해서 약1년반이상이 걸리는 바다건너 오사카 까지의 대 여정을 위해 한양에서 지금부산의 당시 동래부까지 온 여독을 풀어주고 환송연회를 베푼다. 역사상 귀한 이 행사는 이웃나라와의 통신(신뢰를 전함)을 위해서 약 200년간 국가간의 사절단을 파견하고 일본은 전체비용을 들여서 극진히 환대하는 큰 행사를 치른 역사적인 행사가 바로 조신통신사이다. 지금 부산에는 곧 출발하는 통신사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그때 동래부의 사람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고증을 거처서 그 오랜 시간 우리가 문화를 전달하던 행사가 오늘에 재현되고 있다. 지금도 그정도 인원이 움직인다면 큰 규모일 것인데 300녀년전에 400여명의..
대가야 이야기- 미나미지로의 역사왜곡 대가야 이야기- 미나미지로의 웃을수도 없는 비석미나미지로는 일제 강점기때 제7대 조선총독이다. 지금은 이미 허위임이 증명된 임나일본설을 믿은 나머지 대가야의 유적지 고령의 향교 부근에 임나대가야성지任那大伽倻國城址)라는 커다란 비석을 자기이름(南 次?(남차랑) みなみ じろう,)으로 세우고 대가야가 자기들의 옛 터전이라는 인식으로 벌린 웃지도몯할 해프닝을 연출한 자이다. 임나일본이란 대략 4세기~6세기에 가야가 위치한 한반도 남부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가설인데, 미나미 지로의 임나 비석은 바로 이를 근거로 잘못된 역사적 인식에 따라서 고대사의 일부를 자기들 편의대로 기정사실화하기 위해서 벌린 일이었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할 명분을 고착시키고 역사적으로 합리화하려고 안깐 힘을 쓰면서 근거를 마련하려 했을 당시에..
부산의 사적공원-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 부산 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8호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는 수영사적공원 일대를 말하며 지금은 도심 속에 묻혀서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지나칠만큼 도심 속에 가려저 있습니다.수영구 망미동과 수영동 일대인 이 지역은 수영팔도시장에서 북쪽방향으로 약간경사진 곳의 작은 구릉지에 있습니다. 이성은 경상좌도 수군의 본영이 있던 곳 임으로 지금으로 치면 해군기지 사령관이나 함대 사령관 정도의 장군이 있는 곳의 군사 방어 시설물로서 한반도 남해안 일대를 커버하는 조선수군의 중요한 시설물입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초라하게 보이며 몇몇 흔적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경상좌도 수군의 주진(主鎭)이었던 곳으로 당시 벼슬로서는 정3품의 무관이 있던 군사영지였습니다. 이 성지(城址)의 역사를 알아보면 ..
신라 유적 탐방기(3) 암벽에 새긴 선각화 신라 유적 탐방기(3) 암벽에 새긴 선각화 냉골(冷谷)의 목 없는 여래좌상을 지나서 금오산의 약 4부 능선쯤의 높이에 있는 보기 드문 바위그림을 만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1호인 이 선각 육존불은 보통 접할 수 없는 불화로서 바위에 불상을 조각하지 않고 그림을 선으로만 각인한 작품이다. 그림 자체가 모래밭에 그린 것처럼 윤곽이 부드럽고 전체적인 그림이 아름답게 표현된 미술품이다. 이 바위그림은 삼존불이 나란히 두 개로 옆에 삼존선각불이 하나 더 새겨져 있어서 옆의 그림을 합해서 육존불이라고 한다. 만약 바위의 자연적으로 찢겨진 흠이 없는 그냥 깨끗한 평면에 그려진 것으로 상상하며 바라보면 사실 그림기법이 현대인들이 그린 것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묘사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 나타난 얼굴의..
신라 유적 탐방기(2) 머리 없는 불상 신라 유적 탐방기(2) 머리 없는 불상삼능계곡을 오르면서 3능 을 보고 지나서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을 올라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이 아름다운 예술품은 보는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충격도 잠시이고 들끓는 의문으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자세히 보면 미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그 오랜 풍상을 거치면서 남아있는 섬세한 무늬와 옷고름 같은 영총이 늘어진 표현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이 우수한 조각품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계곡에 묻혀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64년 동국대학교 역사 발굴팀이 발견한 것이라고 하며 현재의 이 금오산 등산로 삼능계곡 길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며 미술전문가도 아니지만 역사탐방이 재미있어서 자주 탐방길에 오르며 그때마다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 같..
내가 부른 3.1절 만세 내가 부른 3.1만세이 사진은 3.1절 날 우리 지역 동래에서 재현한 만세사건의 한 장면입니다. 나는 병술생이니까 그때 그 장소에 있을 수는 없는 나이입니다. 그러나 일제가 떠나고 난 이후 매년 우리는 그날이 올 때마다 일제의 만행을 상기하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잊혀질 수 없도록 그때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이 행사를 해 나갈 것이며 나도 매번 동참합니다. 여린 비무장의 학생들이 지르는 함성과 동조하는 주민들의 만세 소리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가 했을 때 탕탕하는 총소리가 나고 왜경이 총검으로 마구 도륙을 내었던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 그 장소에 함께 고함치던 학생들 중에 나도 있었다는 착각에 잠시 빠져 들었다. 아직도 일본은 과거를 똑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일본이라는 나..
죽도 왜성 우연히 만난 죽도 왜성 부산경남 경마장을 지나서 장유를 거처서 김해를 가는길에 맞은편 주유소 옆의 작은 안내판을 보게됬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 조금 높은 구릉지엔 바람이라도 있을줄 알고 차를 주유소옆에 대고 올라가 봤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는 부산시 강서구 죽림동 823번지 일대이다. 이 작은 구릉지의 언덕은 가락산이며, 해서 가락성이라고도 한다. 사실 죽도 왜성은 구포왜성과 더불어 그 옛날 한반도 남부를 대부분 점령한 왜군이 이순신이 바다를 점령할때 해안 곳곳에 왜성을 쌓고 내륙에서 공격하는 조선군을 맊고 장기전을 위한 포석을 한 흔적들이다. 동남해안선을 따라서 바닷가를 중심으로 방어라인을 구축한 것인데, 이 죽도 왜성은 불과 30여m의 낮은 구릉지에 어렵게 먼곳에서 돌을 운반하여 쌓은 성인..
한해가 가는데 다아 잘 됬음 좋겠다.. 이제 조금씩 멈추시면 안될까요.... 현재를 보는 역사 이야기: 무오사화~1498~갑자사화~1504~로부터 ~2011년 역사가 현재와 같을수는 없지만 참고가 될만한 것 들은 참 많습니다. 꼭 내가 해야 잘 한다고 생각지 마시고 남도 잘 할수 있다고 한번씩 생각해 보세요. 남인,북인, 노론,소론, 외척파,친척파,임금파,왕자파, 차세대파,현재파,적군파,아군파, 매국파,수국파,실내파,야외파, 촛불파,바람파,정치파,경제파, 현장파,책상파 일반인 들 에겐 이권다툼 같은 느낌으로 와 닫는 그런 것 도 있지요 .. 약-그룹,의-그룹, Or 최근에는 일반인들 한테는 피부로 와 닫지도 않고 이해 하기도 어려운 그런 것도 있지요. 검-그룹,형-그룹, Or 국가파,개인파, Or 중앙파,지방파, Or 공천파,세력파, 힘싸움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