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이야기

(42)
조선왕조 왕위계보와 도표 조선왕조 왕위연대와 계보 도표 조선왕조 재위 505년간의 가계도 및 왕위 계승 및 그 후의 도표 . 1.태조(太祖, 1335~1408) 1392~1398휘:성계(成桂). 고려말 무신,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92년 조선왕조건국. 2.정종(定宗, 1357~1419)1398~1400 휘:방과(芳果).사병혁파 삼군부에 편입함.즉위 2년만에 방원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됨. 3,태종(太宗, 1369~1422)1400~1418휘:방원(芳遠). 태조의 개국에 공헌,왕자들의 왕위 다툼에서 승리 왕위에 오름. 많은 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함. 4,세종(世宗, 1397~1450)1418~1450휘:도. 태종의 셋째아들.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함,훈민정음 창제,측우기,해시계 등 많은 과학기구 창제..
오늘의 명언 이 글귀가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명언으로 간직하려 합니다. 역사란 지나간 것 들을 볼 수 있는 자기의 거울과 같고 , 미래로 가는 디딤돌 같은 것이기 때문에 역사를 잊어 버리면 당연히 미래로 나아 갈 수 있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민족이 있다면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갈팡질팡 하다가 길을 찾아내는데 많은 고생을 한 후에 언젠간 바른길로 되돌아 오게 될 것입니다. 몇일전 한일전 응원팀 붉은악마가 내건 대형배너에서 본 글귀입니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운동경기와는 상관 없이 , 아주 좋은 글귀로서 새겨야 할 만한 명언입니다.
당당하게 문화재 되찾는 중국의 모습 돌려 받는 중국의 문화재중국이 당한 치욕적인 역사의 한 장이었던 1860년 10월 베이징에 진격한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중국의 유서깊은 위안밍위안(圓明園-원명원)에 난입해서 닥치는대로 보물을 갖어간 일이 있었다. 당시 원명원에는 청나라 황금기의 강희제,옹정제,건륭제가 가치있는 서화 및 각종 역사유물 골동품과 금은 보석을 가득 모아 두고 있었다. 당시 공격한 병사들이 약탈한 문화재가 자그만치 마차 1000대 분량 대충 150만점에 이른다고 한다. 힘없던 시대를 지나고 이제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G2국가로서 국제적인 위상이 드높아지면서 당당하게 빼았긴 문화재를 돌려 받는 모습을 보며 남의 일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중국은 과거에 약탈당한 자국의 문화재의 해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조사단을 서구의 ..
중국의 천년고도 시안은 어떤곳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상처음으로 중국의 천년고도 시안을 간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때 들릴 시안은 어떤 곳인지 알아 본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때 흔히 서안이라고 했던 곳이며 중국어로는 西安, 병음: Xī'ān,이라고 하며 중국의 산시 성의 주요 도시이며 시안 시의 옛 이름은 장안(長安, Cháng'ān),경조라 하며 산시 성의 성도인 곳이다. 도시전체의 지역에 고도로서의 성벽과 왕조때의 여러 웅장한 건물들이 여전히 건재하여 세계각국으로 부터 많은 관광객의 방문이 있는곳이며 역사적인 배경위에 발전하는 현대와 잘 조화되는 경제 산업 교통 첨단과학이 고루 발달하는 중국의 고대도시이며 근대도시이다. 또 고조선과 관련지어 이슈가 된 고대 피라미드 지역이 이곳의 주변에 있습니다. 고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하..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Freedom is not free 라는 말을 상기 하면서 ! 굳이 무슨 달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열들을 생각하고 일년내내 잊어 버려서는 안되지만 적어도 이 6월 한달만이라도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현충일이 생겼으며 곧 그 6월6일이 돌아옵니다.어떤 분들에게는 고통의 날이고 회한과 설움이 북받치는 한맺힌 날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그때 불과 5살의 어린이의 눈으로본 기억을 지금도 생생히 할수 있습니다.그리고 그후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 군필을 하면서 나의 절대적인 가치관이 체험학습으로 형성된 세대로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고 수많은 전쟁을 치루며 지금까지 이..
정돈된 아름다움 정돈된 아름다움 조선통신사 재현 축제에서 부산취타대의 행렬을 봤다. 늠름하고 격조있는 품새와 화려하면서도 흐트러지지않은 의상이 아름다웠다. 의상을 마음대로 예쁘게 만든것은 아닐것이다.역사적으로 고증을 거처서 최대한 그때 그의상을 재현했으리라고 생각한다.지금이야 대학에서 의상을 전공하고 공부한 사람들과 디자인전문가가 좋은 재료로 만든것이지만 그당시에 저렇게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의복과 모자와 악세서리 하나라나를 보면 지금 디자인전문가들이 만들어도 저많큼 아름답고 정돈된 의상을 만들수 있을까 할 정도로 근사하다.
조선통신사 재현 현장에서 본 한일우호 깃발 조선통신사 재현에서 한일우호라는 깃발을 보며 부산에서 몇일째 열리고 있는 조선통신사 재현 축제에서 그 하이라이트인 행렬이 용두산공원에서 많은 부산시민과 일본에서 온 축제참가자들과 함께 식전행사를 마치고 날씨도 화창한 봄날 토요일 오후 종탑앞을 출발해서 광복동거리를 지나는 행렬은 말그대로 장관이었다. 정사,부사,종사관과 그를 따르는 수행자들을 그당시대로 재현하는 이 행렬은 부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뜻깊고 큰 행사이다. 지금도 이런행사를 하는데는 만만찮은 준비와 경비가 들고 번거로운데 약 400년전에 총400여명의 인원이 그 먼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행사를 무려 12번이나 했다는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웃나라와 평화를 누리자는 믿음을 전하고 선린우호를 ..
통신사와 당쟁 조선통신사(2)통신사와 당쟁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200여년간 총12회에 걸처서 한일 양국간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에 파견된 대규모 정부 사절단이다. 국가간의 신의를 거듭확인하는 목적이며 부산을 출발한후의 모든경비를 일본막부가 부담하는 초청외교사절단이었다. 구성은 정사,부사,종사관의 삼사이하, 화원,의원,역관,악사등로 구성되었다.조선수도 한양에서 출발해서 에도까지 순탄할 때 1년반정도 걸리는 긴 여정을 치루는 큰 행사이다. 일본땅에 상륙하게 되면 통신사가 머무는 지역마다 대 환영행사가 일어나고 조선의 관리인 선비들로부터 글씨하나 받으려고 했으며 필담도 주고받으면서 지나가는 고을마다 문화교류가 일어났든 것이다.통신이란 신의를 기반으로 양국이 전쟁을 방지하고 선린 우호관계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