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이었으나 흩어저 버린 생각 단편들

천년도 더 이전에 원효(元曉)선사는 말하고 있다 一心

원효(元曉, 617년 ~ 686년 3월 30일, 경상북도 경산)는 삼국시대와 신라의 고승이자 철학자, 작가, 시인, 정치인.
법명:원효(元曉), 속성(俗姓): 설(薛), 속명: 사(思),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본명:설사(薛思).
별명: 모(毛), 호:화정(和淨). 아버지: 내말 설담날, 태종무열왕의 둘째 사위,아들:설총.
별명: 소성거사(小姓居士), 서곡사미(西谷沙彌), 백부논주(百部論主), 해동법사(海東法師), 해동종주(海東宗主).
고려시대:원효보살, 원효성사(元曉聖師),
시효:화쟁국사(和諍國師). 본명은 설사(薛思)이지만 법명으로 원효대사로 불린다.

경주 설씨와 순창 설씨의 중시조인 설총의 생부, 한국 최초의 대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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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초조화엄강사원효대화상지진영


원효(元曉)선사해동초조화엄강사원효대화상지진영

이제 흩어저버린 단편들의 생각을 다시 모아 보려고,

선사열전을 섭렵하는 마음으로 원효(元曉)선사를 알아본다.
원효는 한국 최고의 불교사상가로서 당시 사회지도자로도 볼수 있는 스스로 깨우친 신라의 고승이다.

신라 진평왕 39년617년에 당시 압량군 불지촌에서 태어나서 신문왕6년 686년에 성불했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경상북도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이라고 한다.
 
속성은 설(薛)이며 이름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다.
즉 설서당이다.혹은 설서동임.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생모가 꾸었다고 하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꿈대로라면 이미 태어날때 득도하여 성인이 되게 되어 있는것으로 볼수있다.
그렇다면 설총 또한 이미 정해진 일이란 생각도 든다.)
 

삼국유사삼국유사 진본

아명 서당은 속어로 털이며 서당은 새털을 의미한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출산할때 집 근처의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다급하게 해산하게 되어 남편의 털옷을 밤나무에 걸고 그 밑에서 출산한데서 연유된 이름이라고 한다.

원효(元曉)라는 이름은 그가 10세 전후에 출가한 뒤 스스로 첫새벽 시단[始旦]을 뜻하는 원효라고 지은 것이다.

그는 그의 법명 원효라는 이름처럼 한국 불교 사상 뿐만 아니라 이땅에서 철학 사상의 새벽을 연 것 임엔 틀림없다.

불교가 공인된 지 100년이 지났으며 이때 불교국가 신라에는 많은 고승들이 있었지만,원효가 득도하여 佛法을 깨우칠때는 특정한 스승 없이 스스로 깨우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젊은 날의 원효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것은 득도 이전에 무명의 승려에 대한 기록이 없기때문이라고 본다.
당시 원효가 공부한 흔적은 불교 경전 뿐만 아니라 유가(儒家)와 도가(道家)까지 광범위한 학문을 닦았으며 불교 수행자로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고의 고행을 하면서 득도 한 것으로 본다.
그가 남긴 우수한 학문서나 경서등의 저술들의 깊이에서 유추해 볼수 있을것이다.

원효는 당나라로 두번 유학 하려했으나 첫번째는 실패하고 두번째는 도중에 크게 깨달아 돌아왔다.

원효가 34세때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위해 압록강 건너 요동까지 갔다가 그곳 당 수비군에게 잡혀 고초를격고 되돌아 왔다.

두번째는 45세때 역시 의상과 함께 해로(海路)를 이용해 당(唐)으로 가려고 백제 당주계(唐州界)로 갔는데 이미 어둡고 비바람이 처서 어느 한 땅막에서 자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봤을때 지난밤 잠든곳이 오래된 어느 무덤속임을 알았지만 계속되는 비 때문에 하룻밤을 더 자게 되었다.
그날 밤 원효는 동티(귀신들이 애를 먹임)를 만나서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이는 도리어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된다.

같은 장소에서 하룻밤은 땅막에서 편히보냈고 하룻밤은 귀신집에서 시달린 것 이다.
원효는 마음이 일어남과 갖가지 법(현상)이 발현됨은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처럼 원효는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萬法)은 오직 인식일 뿐인데 마음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느냐 ? 를 알게 된 것이다.

당나라에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마음밖에 법이 따로 없다는 사실이 곧 진리이다.

당에 진리가 있다면 신라에는 없겠는가.
그의 이 깨달음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더욱 발전각색되었다.
그가 무덤 속에서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 이다.

유학을 버리고 스스로 정진해서 불전의 연구와 저술 그리고 대중교화에 몰두한다.
그가 남긴 저술은 무려 100여종 240여권(또는 86부 180여권)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효는 대승 소승불교를 막라한 저술을 하며 깊은 學解를 남기며 지금도 최고의 불교해설서로서 대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은 그의 탁월한 이해와 견해로서 중국불교계에 역유입 되어 최고의 학습서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아쉽게도 저서 유작중에서 19부 22권만 남아서 1천3백년의 장구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진리를 말하며 읽혀지고 있다.


그 중에서 수많은 일화가 함께하는 금강삼매경소,
원효사상의 개론서로보는 화쟁을 풀이한 십문화쟁론 등은 현재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원효철학의 집대성이라고 말하는 대승기신론소를 포함한다.

"대승기신론"은 금강경,원각경,능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의 근본경서의 논서이다.
대승기신론은  당시 인도에서 대립던 중관파와 유가파(유식파)의 양대 불교사상의 문제를 화합시키는 이론으로 진과 속이 별개가 아니며 진속일여이고,더러움과 깨끗함이 둘이 아니라 염정불이 라는 사상을 표현한 논서이다.

이를 간단히 언급한다면,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속세에서 깨달음을 향해서 끊임없이 수행하면 마침내 완성된 인격 "진"을 이루며,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아직도 염오한 단계에서 고생하는 중생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상이 "진속일여","염정불이"이다.

대승기신론의 기존 논의에관한 9종의 연구서를 집필했지만,현재 4권(대승기신론소 2권, 대승기신론별기 2권)이 남아서 전해온다.   

국가 종파등을 초월해서 지어진 "대승기신론"에 대한 많은 주석서들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원효의 "기신론삼소"로 불리고 있다.
 
기신론3소:
중국 정영사의 혜원(서기 523∼592)의 주석서인「정영소」,
신라의 원효대사의 주석서인 소위「해동소」,
그리고 중국 화엄학의 대가 법장(서기 643∼712)의「현수소」.

기신론의 3소라고 하지만,
깊이 연구해 보면 원효의 "해동소"는 혜원의 "정영소"를 단연 능가하는 내용이며 "기신론"주석의 백미라 일컫는 법장의 "현수소"는"해동소" 내용을 카피한 대목이 많고 원효의 견해를 표현만 약간씩 바꿔 편집한곳도 않다.

당연히 현수소는 해동소가 있기 때문에 탄생된 저술이다.
당나라의 징관이 스승 법장으로부터「해동기신소의」를 배웠다고 증언하고 있음을「송고승전」도 밝히고 있다.

원효는 당시 당학을 배우지 않고 국내에서 터득한 학문과 사상으로 국경을 넘어 중국, 일본, 인도로 멀리 세계로 전파했다.
불출호 지천하란 노자의 말처럼 방안에서 세계를 본다.   

원효는 산속에 은둔하여 고행만 하던 승려는 아니었다.
서민 대중과 고통받는 하층민 그리고 신라가 정복한 지역 까지도 가엾은 중생들에게도 불법을 전파했다.

한 예로 원효가 과부가 된 요석궁의 공주와 잠간 맺은 인연으로 설총을 낳은후 승복을 벗고 소성거사(小姓居士)라 한 일은 득도한 사람의 파격이었을까?
이는 절대로 아무나 할수 있는 그런 파격이 아니었음을 후에 알게 된다.
그 파계의 유산인 설총이 누구인가?
한국 유교의 문묘에 배향되고 있는 십팔유현중에서 첫 번째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설총이 아닌가.

염정불이 진속일여(染淨不二 眞俗一如)는 그의 학문적 이론이자 종교적 실천의 기초인데 지금도 이 계송은 유효하며 수많은사람이 수행하고 있지 않는가?.
어쩌면 아주 쉽운 이론 같다.
더럽고 깨끗함이 둘이 아니고 진리의 길과 세속의 길이 본래 같다고 보는 이해는 참 해답이다.
이 답은 진리의 근원인 一心이 보는 결과이다.
이미 이를 깨닳았기때문에 원효는 훻씬 자유롭고 큰 삶을 살게된다.
 
당시의 승려들이 왕실과 귀족들과 함께 城內 대사원에서 편한 삶을 영위하는것과는 반대로 원효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불사와 불법을 전파하고 중생을 계도한다.
그는 속인의 모습으로 무애가를 부르며 다녔다.

*무애가:
화엄경의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 를 말한다.
해: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 난다.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 무애가를 부르며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극락 정토에 태어난다는 희망을 주는 진정한 보살행을 했다.

말년에 보살행(菩薩行)으로써 중생교화를 하다가 소성거사가 아닌 원효성사로서 穴寺(혈사:토굴)에서 신문왕 6년(686) 3월 30일 70세의 생애를 마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원효사상의 요약

1. 일심사상:
일심사상은 저서 "금강삼매경론","대승기신론소" 등 그의 저술에서 명시함.

귀일심원(歸一心源):
마음의 지식으로 깊이 통찰해서 본래의 생각대로 돌아가는 것 을 목표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을 강조한다.
또 만법귀일(萬法歸一),
만행귀진(萬行歸眞)을 믿고 그에 따라 생활한다.
그의 철학은 일심이 만물의 주추이며 일심의 세계를 불국토(佛國土)즉 극락으로 보고 이것을 대승불성(佛性)열반이라고 보았다.

2. 화쟁사상:
원효는 불교의 종파를 타파하려했으며,어느 종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화엄경","반야경","열반경","해심밀경 海深密經","아미타경" 등 대승불교의 경전 전체를 섭렵하고 통달했다.
그래서 불교전체를 진리로 귀납시켜서 진리가운데서 분열이 있을수 없는 높은불교의 사상을 보여준다.

이런 조화를 이루려는 사상을 화쟁사상이라고 한다.
화쟁사상에 대한 저술:
십문화쟁론 十門和諍論,
원효는 십문화쟁론으로 일승불교(一乘佛敎)를 목표로 논리적인 체계를 제시 함으로서 한국불교에 귀일사상을 전하게 되어 큰 영향을 남겼다.

3. 무애사상: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인이 되는 것 이다.
아무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 라는
一切無碍人一道出生死 라는 그의 철학을 말한다.

귀일심원은 부처와 중생까지도 둘로 보지 않았으며,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차별상(差別相)이 없다.라고 한다.
그래서 철저한 자유가 중생심(衆生心)에 본래 있는것으로 보았고,
자기 스스로도 자유인이 되어 어느 종파에도 치우치지 않을수 있었으며 최고의 일승과 일심을 주장했다.
불교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 원효는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보여준다.

불교나 학계 또는 세계불교에서도 원효의 업적은 대단하며 대 선사로 존경받고 있다.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보이는 크고작은 사찰과 암자들에서 원효의 흔적들은 그의 역동적인 삶을 지금도 느낄수 있다.  
경남 양산에 있는 천성산은 산중턱의 넓은 풀밭에서 원효가 당나라의 승려 1000명에게 설법해서 그들이 모두 깨달아 성인이 되게 하였다는 곳으로 이름이 천성산이다.

수많은 곳의 원효암,원효가 들어가는 지명,산,사찰 이루 다 말할수 없이 많은 그의 흔적들은 그의 믿음이 주는 역동적인 삶을 말해준다고 본다.


원효대사가 이미 금강삼매경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현재를 금강삼매화 한 이야기는 부산의 안적사에서 흔적을 찾아볼수 있다.

바로가기: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pandoracube&folder=5&list_id=12788950


금강삼매경론은 : http://mtcha.com.ne.kr/korea-term/sinra/term15-gumgangsammegyongron.htm
금강삼매경론  1 : http://www.cbeta.org/result/normal/T34/1730_001.htm
금강삼매경론  2 : http://www.cbeta.org/result/normal/T34/1730_002.htm
금강삼매경론  2 : http://www.cbeta.org/result/normal/T34/1730_003.htm

번역: http://www.baekryunsa.org/bbs/skin/ggambo7002_board/print.php?id=brs_bul2&no=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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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관룡산(觀龍山)주봉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거대한 석봉이 있고 그위에 아득히 동쪽을 향해 바라보는 암봉에 높이 앉아있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을 만나게 된다. 

관룡사(
觀龍寺)에서는 우측으로 약간 오르막을 올라서 관룡산 주봉을 오르거나 화왕산 방향으로 가는 갈림길옆의 위험한 암봉위에 어떻게 안치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위치에 석굴암의 여래석상을 옮겨온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좌상이 온화한 모습으로 암봉위에 앉아 있다.


지금은 편리하게 나무계단을 만들어서 노약자라도 쉽게 참배할수 있도록 잘 배려하고 있다.

석상의 모습은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하는 촉지인(觸地印) 또는 지지인(指地印)이라고 하는 모습인데 석가모니가 온갖악귀를 물리치고 지신(地神)을 불러 가르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고 하는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
오른손은 내려서 손가락으로 아래(땅)를 가리키고 왼손은 선정인의 모습을 한 자세이다.


약한 붉은 빛이 도는 연화자대위에 밝은 하얀 화강암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이 여래좌상(如來坐像)은 통일신라 시대(統一新羅時代)가 끝난후인 남북국 시대(南北國時代)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신라의 석조 여래 좌상이며 우리나라 보물 제295호로 지정되어 있는 우수한 문화 유산이다.


**
남북국 시대(南北國時代):698년 발해가 건국해서 신라와 공존하다 926년 발해가망하고 935년 신라가 멸망할때까지 삼국시대이후 후삼국시대 이전의 기간을 말한다.

**


불자의 눈으로 보는 이 여래좌상은 여느 불상과는 그 느낌이 사못 다르다.
온화하고 안정되며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인상이며 특히 암봉위에서 동쪽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하거나 근엄하지 않고 소박하면서 안심을 주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아래는 석양이 곧 지는 시간에 찍은 사진입니다.

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관룡사 관룡산관룡사 관룡산

관룡사에서 바라보는 관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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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없는날 이야기와 태백살(太白殺)의 방위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태양과 태양게를 돌고 있는 행성들의 유형 무형의 에너지를 받으며 살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모르긴해도 좋은에너지를 받아서 생명이 활발하게 왕성해 지는것처럼 어떤 모르는 에너지는 생명을 해치거나 인간에게는 화를 주는 에너지도 있을것이다.



태백성-태백살(太白殺) 금성태백살(太白殺) 금성


태양에서 지구보다 가깝고 뜨거운 별 금성은 서양에서는 로마신화를 인용해서 비너스(Venus)라고 부르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금성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의 여신 이슈타르라 불렀으며 이후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 등 금성의 이름을 아름다운 여성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에서는 라틴어에서의 '빛을 가져오는 자'로서 루시퍼, Lucifer라 불렀으며 가장 높은 천사로 불리는데 나중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타락천사의 이름으로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하여튼 이와는 달리 우리조상들의 토속 풍습이나 역사적인 기록들로 볼때 금성은 태백성으로 좋치않은 쪽으로 보고 있다.

태백성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시각에  어떤 방향으로 비추느냐에 따라서 상당한 흉사나 불길을 예고하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역사적인 기록이나 전래 구전설화도 상당히 리얼리틱하다.
이처럼 나쁜것을 주는 어떤 에너지가 있는것으로 무가에서는 살(殺)이라고 하며 태백성에서 내뿜는 어떤 나쁜힘을 태백살이라고 하며 이를 존댓말로 손 이라고 한다.


손없는날 태백살(太白殺) 방위표손없는날 태백살(太白殺) 방위표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나쁜것을 나쁘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경향이 있다.  
그래서 재수가 없는 액운이 오는것을 손님이 온다고 한 것이다.

밤에오는 도둑놈을 밤손님이라고 한다거나 사람을 죽게하는 무서운 전염병인 천년두도 마마라고 한것이나,
다 이런 맥락으로 크게 불길한것을 표현할때 도리어 높임말로 존대한 것을 볼 수 있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손있는 방위의 날은 재수없는 불길한 날자의 방향인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날자에 따라서 재수없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으로 이사를 가거나 사업차 출타 하거나 전쟁하러 간다면 죽거나 다치거나 실패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지지도 않은것이고 밝히려고 하지도 않겠지만 추측한다면 금성의 공전, 자전 궤도 또는 구성물질등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태양의 에너지 중에서 특별히 나쁜 어떤 에너지를 지구에 방사한다면 무시할 수도 없는 이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대부분의 행성은 시계도는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지만 금성은 특별하게 시계도는 방향으로 자전한다.
즉 북극과 남극을 기준축으로 하고 회전하는 방향을 말하는것으로서 
우리는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사라지지만 금성에서는 반대로 태양이 서쪽에서 뜨고 동쪽으로 진다는 말이다.

참고로 천왕성도 금성처럼 태양계의 모든행성과는 반대로 자전한다.


또 모든 행성은 지자기가 있어 자기장을 방출하고 자극이 있지만 금성은 지자기가 없거나 미미하다.

그래서 유추한다면 시계도는 반대방향으로 도는 우리의 모든행성은 좋은기운을 보내고 받지만 꺼꾸로 돌아가는 금성은 지자기도 없고 차겁고 밝은 빛을내는 나쁜기운이 침범한다고 가정해 본다.



위의 도표를 보면 알수 있드시 일반적으로 손없는 날이 9일이나 10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기에게 해당되는 날자의 방위 빼고는 모두다 손없는 날인것이다.


그리고 동양학에서 방위는 4방이 아니고 5방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 한다면 손없는 날 이 아니고 손이 중방에 있는 날이다.

그래서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면 손이 오는 방향으로 가다가 손과 마주치게 되는 일을 피하자고 하는것이다.


즉 나쁜것과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말자는 것으로서 손없는날이라고 하는 9일10일은 손이 없는것이 아니고 내가 있는곳에 손이 있기 때문에 손을 피해서 이사를 간다거나 떠나는게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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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lms 2014.08.26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없는 날 풍습의 문제점은 10개 중 2개만 손이 없고
    나머지 8개가 손이 있어서 그 날짜에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직장인들이 주말에 맞춰서 이사를 하려고 하니
    손없는 주말은 더욱 가격이 치솟습니다.
    게다가 음양오행도 아니고 음력 날짜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매달이 30일까지 있는 것도 아니고...

  2. Favicon of http://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MobilePhone 2014.08.26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조금 이해가 ? 실제로는 자기에게 손이 없는 날은 10개중 8개가 손이 해당없는 날이 되는것으로 이해 됩니다.


 

동양학과 음양오행(陰陽五行)이란


동양학에서 오행(五行)은 의학,철학,풍수등 많은곳에 적용되는 바탕학문으로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사상이며 이론이다.

동양 철학으로 본다면 오행(五行)은 우주의 모든 물상변화를 5가지로 압축설명하는 이론이다.

5행의 기본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다섯 개의 기본 원소로서  생각하는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가 나아가고 막히며 운행변전(運行變轉)하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즉 5행(五行)이라는 글자처럼 5가지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든다면 5가지의 장기,다섯가지의 방향,다섯가지의 계절,등 서양학문에서 4가지 방위를 정하는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양학에서는 내가 서 있는곳의 방향까지 생각해서 중방이라고 하고 5방으로 한는것이다.


5행(五行)에 대한 이론은 중국 서경(書經)의 '홍범(洪範)'에서 말하고 있는것으로 전하고 있다.
홍범(洪範):은나라의 유민(遺民) 기자(箕子)가 주나라의 무왕에게 말한 것을 기록한 것. 
이를 본다면 오행사상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는 다섯가지의 우주만물에 대한 기본 요소를 말하고 있으며 정밀한 원리까지는 정립되기 이전으로 보인다.

전국시대에 들어와서 5행은 상생(相生)상극(相剋)을 말하게 되며 만물이 운행하면서 나고 멸하는 이치를 정립하게 된다.

이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을 우주나 인간사의 모든 분야에 적용해서 이해하고 예측까지 해 보는 학문으로 발전한다.5행사상(五行思想)은 축약해서 서로 도와주어 이롭게 되는 상생(相生)운행이 있고 마주치면 서로 상처내고 부딫혀 파괴되는 상극(相剋)이라는 운행이기본이론이다.

상생운행은 순리라고 말하는 형태로서 목(木)은 화(火)를 생하고, 화(火)는 토(土)를, 토(土)는 금(金)을, 금(金)은 수(水)를, 수(水)는 목(木)을 생하고 도와주는 순행 운행이다.

상극(相剋)운행은 역행이라고도 말하며 수는 화를 소멸시키고 , 화는 금을, 금은 목을, 목은 토를, 토는 수를 소멸하려는 기운으로서 서로 만나면 서로 좋지 않음을 나타낸다.

 

오행이 만물은 모든것이 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다는 상대적 이론인 음양이라는 두기지 원칙에 대입되어 음양5행설(陰陽五行說)이라는 복잡한 이론이 성립되어 지금의 동약학의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오행의 동양학 기본도표

오행으로 보는 오방위를 기준으로 동양학에 대입된 모습

 

아래표는 파란화살표로서 원을 따라도는것은 순행의 원리로서 상생하는 방햐이며 붉은 화살표는 상극으로 공격하고 멸하는 변화를 보여주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행의 상생 상극 운행도표

오행기초 상생상극 도표

 

참고링크:오장육부
http://blogfam.tistory.com/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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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시 링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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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물레방아 2014.02.13 2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친구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퍼가겠습니다

  2. Favicon of http://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2014.02.14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블로그는 펌 금지입니다.


한여름 더위탈출로 책한권을 읽으려 한다.


남부지방은 찜통이 따로 없이 연일 폭염이 계속된다.
주말쯤은 하늘에서 물을 좀 뿌릴것이라는 뉴스가 있지만 물은 적셔 봐야 아는것이고 하여튼 무덥긴 하다.

범어사 계곡엘 가서 몸을 좀 식히려고 한후 인터넷에서 대충 내용은 읽어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직접 읽을 요량으로 그저께 주문한 책 "영혼의 부족 코기를 찾아서"라는  앨런-이레이라 가 쓴 책이 방금 택배로 받았다.

초등학교때 새책받으면서 설례든 그런 감정이 아직도 새책을 만질때는 느껴저서 좋다.


내일은 이 책을 들고 숲속을 가서 발담구고 한나절 쉴것이다.
이 책을 진작 읽을려고 했던것이 그만 인터넷이라는 좋은 매체 때문에 극적인 효과도 없이 미리 중간중간 다 읽어 버려서 좀 김새기는 하지만 피서도 하고 정독을 하려 한다.

이 책이 올여름 피서독서로 오래 남게 되길 바라면서 ...

영혼의 부족 코기를 찾아서영혼의 부족 코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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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수덕사 탐방때 좋은 뜻의 글귀를 찍은 것 입니다. 쓰신분이 누구인진 모릅니다. 


너른 뜻으로 많이 해석되는 글이며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고 알고 있지만 단순히 해석만 한다면, 지극한 마음으로 삶이 다 할때 까지 큰 법에 귀의 하며 정성을 다해서 받든다는 것을 글자로 표현 한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거룩한 부처님, 거룩한 법, 거룩한 불가 전체를 대하는 불자로서의 경건한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속가에서도 어던 일이나 사람을 대할때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행하라는 취지로서 말하곤하며 모든일을 그렇게 했을때 그 결과는 좋게 다가오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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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풂의 댓가 

남에게 주는 것은 곧 내가 받는 것입니다. 준다고 하는 것은 넉넉한 사람이 여유롭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베푸는 것은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합니다. 마음이 풍요하다면 비록 부족할지라도 자기 것을 남을 위해 줄 수가 있습니다.
대개는 나도 부족한데 남에게 줄 게 어디 있느냐고 생각합니다.
 
만물이 새롭게 돋아나는 이 좋은 계절에 눈을 들어 조금만 넓게 바라보면 우리가 관심 둘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관심을 가진 자는 자기가 남에게 필요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쁘게 변해가더라도 우리가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꾼다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이제 어렵게 피어오르는 새싹을 밟지 않을 수 있으며, 잘 자라도록 물을 줄 수도 있게 됩니다.
 
사람이 애당초 태어날 때 내 것을 남에게 거저 주는 프로그램은 안 돼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서 편리하게 프로그램 된 채로 오랫동안 살아오기 때문에 남에게 배려를 하는 것은 약간의 프로그램 오류를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배려하고 베풀고 도와주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 수 없는 세상에 와 있습니다.
내가 베풀 때 타인이 내게 베풀 것이며 내가 배려할 때 타인이 나를 배려하게 됩니다.
많은 이익을 내고 많이 받아서 기쁨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에 주는 것은 손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한번 베풀어 본다면 대가를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잠깐 베풀고 난 후에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베풀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그리고 베풂을 받자고 기억해 줄 것을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간사해서 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더 많은 이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풍성하면 줄 것이 많아지고 준 것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지 않으면 자신이 행복해 집니다.
 
이 논리는 프로그램 된 우리의 본능과 배치되어 처음에는 갈등을 유발할지 모르지만 베푸는 자만이 위대한 성공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과장된 허세나 교만으로는 남을 도울 수 없을  뿐더러 자기를 무너뜨립니다.
이기심으로 남에게 준다면 받는 사람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교만과 이기심으로 남에게 가르치거나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베푼 것이 아니며 받는 사람을 슬프게 하거나 화나게 한 것입니다.
넉넉하게 가지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일생 아무리 물질을 모아도 사랑을 살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베풀면 큰 사랑을 얻을 수 있답니다.
 
사진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으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라고 하지만 무관심으로 바라보면 그저 하나의 꽃일 뿐입니다. 

연꽃


<바람부는 들판에 나부끼는 연꽃 사진>

 

http://www.yourstage.com/newsinfo/cultureview.aspx?thread=7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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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림(叢林) 빈댜바나(산스크리트어: Vindhyavana).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림시대로 보는 한국 8대총림
 

우리나라불교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은 5대총림에서 추가로 3개의 총림을 의결했다.
먼저 총림(叢林)은 범어로 빈타파나(貧陀婆那)이며 산스크리트어 Vindhyavana(빈댜바나)의 음역으로서 그 뜻은 여러 승려들이 수풀처럼 모여서 화합하고 수행하기 위해 주거하는 곳이며 단림(檀林)이라고도 한다.
대가람으로서 많은 승려의 수행하는 도장이며 이 총림의 최고지도자를 방장(方丈)스님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선원(禪院), 강원(講院),율원(律院)을 갖추어야 하며  기타 사찰의 제반 시설을 확보한 일정규모이상의 대찰이다.


1.선원(禪院)은 선(禪)을 전문으로 하는 승려들, 즉 선승들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말한다.
선원에는 최고 지도자로서 조실(祖室)이 있고 승려의 기강을 감독하는 입승(立繩) 등이 있다.


2.강원(講院)은 불교의 경전(經典)을 배우는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이다.
강사(講師)가 있고 학인(學人)이 있어 정규적인 수업을 한다.
수학과정은 사미과(沙彌科), 4집과(四集科), 4교과(四敎科), 대교과(大敎科) 등이며,
대학원 같은 수의과(隨意科)가 있다.
강원은 총림뿐만아니라 몇곳의 대찰에서 운영되고 있다.
동학사(東鶴寺) 운문사(雲門寺) 등.


3.율원(律院)이란 올바른 율법을 가르쳐 승려들의 기강을 세우는 율사(律師)를 양성하는 불교의 전문교육기관이다.




한국 불교의 조계종에는 다섯 사찰이 선원과 강원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이들을 5대 총림이라 하며 2012년 추가된 3사를 포함해서 한국 8대 총림이 되었다.


8대총림

조계산 송광사 : 조계 총림
양산 통도사 : 영축 총림
가야산 해인사 : 가야 총림
예산 수덕사 : 덕숭 총림
장성 백양사 : 고불 총림


동래 금정산:범어사(제14교구 본사)
동화사(제9교구 본사),
쌍계사(제13교구 본사)


로서 총 8개의 총림이 있다.

율원율원


선원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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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인물-교양/불교이야기] - 여여-如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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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ramatique.tistory.com BlogIcon 블로그에세이-BlogEssay Dramatique 2012.11.16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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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의 여여-如如
 2012.11.03 18:21

어느 유명한 암자의 여여문(如如門)을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여여를 알아본다.


불교에서 여(如)또는 여여(如如)라는 말을 종종 보게된다.
여래(如來)라고 쓸때도 계집녀(女)변에 입구"口"자를 붙인 글자로 여(如)로 쓴다.
단순히 사전적으로 여(如)자는 같다는 뜻으로 같을 여 이다.

정리하면
1. 같다, 2. 어떠하다 3. 미치다, 닿다 4. 쫓다, 따르다 5. 가다, 이르다 6. 당연히 ~하여야 한다 7. 맞서다, 대항하다(對抗) 8. 비슷하다 9. 어찌 10. 가령(假令), 만일(萬一).마땅히 등으로 풀이한다.

뜻이 거의 비슷한 맥락이지만 어찌"여"자로 읽힐때는 주의해야하며 불교에서는 더욱이 사전적의미에 여래와 하나 됨이 더해진다.

여(如)자를 포함하는 보통단어
如前-여전:어떤 대상(對象)이 변함없이 예전(前)과 같다.
缺如-결여:어떤게 있어야 할 것인데 없어젔거나 좀 모자란다는 말.
如干-여간:얼마 안된다는뜻,보통(普通),조금
如實-여실:사실(事實)과 똑 같다,실제(實際)와 틀림없다,진여(眞如),


이 글은 일반인으로서 공부하는 자세로 알아보는 것이며 오류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좋게 봐 주시길 바라며 소중한 지도를 바랍니다.



여여문여여문

 

여래(如來)-진여(眞如)-여여(如如)-불이(不二).
이 여(如)자 한 글자는 불교적으로 많은 뜻과 큰 사상을 대변한다거나 곧 어떤 길을 열게하는 큰 글자임을 느껴 알 수 있다.

현재 불교에서는 여여를 하나의 명사로 사용하며 글자적 뜻으로 보지않고 어떤 "사물 본연의 모습"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진여(眞如)는 수행을 완성하고 인격이 완성되어 완전한 사람이 된 진인이신 부처님 즉 如來를 지칭한다.
부처님의 열 가지 명칭 중에서 하나이고,  진리에 인해서 오셨음으로 여래(如來)라 한다.
즉 정각을 이뤘다는 뜻으로서 이를 굳이 해석할 필요없이 참 이며 진리 그 자체가 존재함을 일컬음으로 그 의미를 다 설명할수는 없으며 스스로 이해하고 인지해야 하는 쉽고도 어려운 단어이다.

또한 진여(眞如)의 길을 걸으며 마침내 해탈하여 열반에 들었다는 뜻으로 말할때는 여거(如去)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경에서는 간결한 표현으로 “여래(如來)"란 삼라만상의 모든것들이 연관되는 결과가 본래 대로 변함없이 그대로이라는 말로 여여(如如)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불교에서의 심오한 철학적 표현으로 여여-如如 는 본래그대로이어야 하는데 마음이 비워지지않아서 참진이 어긋나기 시작해서 그 작용의 끝이 어마어마하개 어귿남을 경계해서  여여-如如 하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일찍이 붓다께서 깨닳고 실천하여 참진을 이룬분이기 때문에 如來라고 한다.
여여(如如)의 인도 지방 고어인 산스크리트어로  타타타(tathata)인데 이의 의역으로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을 말하는 단어이다.

불교의 깊은 철학적 의미를 알기 힘들지만,
공부하는 자세로 알아본다.

결과적으로 여여와 불이(不二)를 같이 생각해 볼수 있으며,
우리는 사실로 있는그대로 꾸밈이나 가식으로 포장하지 말고 자신을 던질때 결과가 사실로 나타날수 있겠지만,허구로 시작한 결과가 참으로 나타나길 바라는 욕심이 아무것도 될수 없게 하리라는 짐작이 간다.

이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무수히 일깨워주는 불이(不二)라는 말로서 동일 평등함을 강조하고 있다.


얼핏듣기에 여여(如如)하고 여여(如如)하리라 고 한다면 이상한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드러나 있는 그대로 변함없이 같기 때문에 불이(不二)임을 알수 있다.

항상 어렵게만 들리지만,
여(如)는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아니고 오는것도 아니고 가는것도아니며 없어지지도 않고 작용도 없고 결과도 없는 불이(不二)도 아니며 그냥 여(如)일 것임으로 이는 참진(眞)이 아니겠는가 하며 이해 하려 합니다.



[철학-인물-교양/불교이야기] - 사찰탐방(寺刹探訪)-신어산(神魚山)은하사(銀河寺)

[분류 전체보기] - 불교이야기(1)-산문(山門)

[여행,관광,지역소개] - 명찰(名寺刹 )탐방 - 극락암(極樂庵)과 백운암

[여행,관광,지역소개] - 전통사찰-만어사 탐방

[잡설/사람사는이야기] - 아기부처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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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탐방(寺刹探訪)-신어산(神魚山)은하사(銀河寺).

신어산(神魚山) 은하사(銀河寺)는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번지에 위치한 사찰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이며 종무소는 055 - 330 - 4434 ,  4411이다.

은하사는 두 마리의 물고기를 뜻하는 신어산(634m)이 위용있게 둘러처진 중턱의 안온한 곳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신어산은 오래전 한때 소금강산 은하산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김해는 가락국의 옛터로서 수많은 역사적 흔적과 이야기들이 담긴 수로왕과 허황후의 고장이다.
이 은하사 또한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과 밀접한 사찰이다.


신어산(神魚山) 은하사(銀河寺)신어산(神魚山) 은하사(銀河寺)


사찰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전해오는 여러 이야기중에서 가야의 수로왕 때 왕후인 허황옥의 오빠 장유가 창건했다고 한다.
장유는 아유타국의 왕으로 부터 시집가는 허황옥을 보살필것을 명받고 가솔들과 함께 와서 7왕자를 생산한 허황후와 함께 번창한 가락국에서 소임을 마치고 은하사에서 불도의 길을 간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이름은 서림사(西林寺)였었다.
신어산(神魚山) 동쪽에 장유가 세운 또다른 사찰 동림사가 있으며 서쪽에 있는 이 은하사를 서림사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찰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을 기초로 해서 살펴볼때 삼국 시대이전의 파편이 없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 있던 건물은 동림사와 함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현재 은하사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은하사의 대웅전 수미단에 있는 쌍어문양은 아유타국이 사용하는 문장으로 추정하며 허황옥과 관련이 있는것이 사실이라고 추정할수도 있다.

쌍어문양은 허황옥의 출신지로 알려지고 있는 아유타국이 인도의 한 왕국이라고 보고 종종 어필되는 문양이다.
그래서 은하사가 있는 신어산이라는 이름이 우연이 아니고 '신의 물고기'라는 뜻으로 붙여진것으로 생각된다.

이 은하사는 진입로가 상당한 경사로이지만 진입하는 내내 잘 발달된 소나무숲이 참 좋다.
진입로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영화 "달마야 놀자"가  촬영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해의 많은 유적중에서도 바로 인근에 수로왕릉과 허화후의 비능이 있으며 가야 시대의 고분과 유적들도 많다.


가락국 허황옥의 이야기에는 물고기나, 바다, 또는 물에 관련지어진 이야기가 많다.
부근의 삼랑진 만어사의 돌이된 수만은 물고기나,
신어산이나 쌍어 문양등이 전설처럼 대양을 건너오면서 바다에서 일어난 난관들을 신앙같은 힘으로 이뤄낸 결과에서 기인한것으로도 생각해 본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탔지만 조선말기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것이지만,
경내의 어마어마한 기둥이나 전각들의 아름다운 양식들은 여느 사찰에서 볼수 없는 특별한 느낌은 받을수 있다.
특히 범종루 난간에 있는 머리는 용 몸은 고기 모양을 한 목어(신어(?))도 특이하다.

김해는 사라진 제국 가야를 기억하게 하는 많은것들이 있지만 이 절 은하사에서도 깊은 역사성이 전해진다.
아유타에서 건너온 허황옥이나 그의 수행장 오빠 장유 가 창건했다고도 하지만,
어쩌면 장유화상이 말년에 이 절에서 수도하며 여생을 보낸것일뿐인지도 모른다.
허황후와 관련된 절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곳의 무척산 모은암도 있다.

그리고 수로왕과 허황후의 일곱왕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 은하사와 경남 질산에 있는 칠불사에서도 접할수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의 평면도는 정사각형 구조로 여느 사찰과는 다르며,
지붕또한 맞배지붕과 다포양식으로 조선후기의 확실한 특징을 보여준다.

사찰들이 대부분 풍수적으로 명당에 자리하지만,
이곳 은하사는 들어서면 방문자로 하여금 특별히 안온한 느낌을 받는 좋은 터로 생각된다.




은하사의 알려진 연혁
42년(신라 유리왕 19)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이 창건
1594년(선조 27)     임진왜란때 전소
1644년(인조 22)     중건
1688년(숙종 14)     십육전(十六殿)의 16나한상을 조성
1753년(영조 29)     법고(法鼓)를 조성
1761년(영조 37)     시왕전(十王殿) 중수
1797년(정조 21)     취운루(翠雲樓) 중창
1801년(순조 1)     대웅전 중창
1803년(순조 3)     전사찰 중수
1812년(순조 12)     승당(僧堂), 취운루 중수
1831년(순조 31)     사찰 중수
1835년(헌종 1)     대웅전의 관음보살상 개금 ,후불탱 조성
1861년(철종 12)     대웅전 중창
1866년(고종 3)     청량암(淸凉庵) 중수
1892년(고종 29)     사찰 중수
1904년(광무 8)     대웅전의 후불탱 조성
1932·1938·1948년     사찰 중수함
1970년대 이후   대성(大成)스님이 30여 년간에 걸쳐 전각을 보수하고 도량을 정비함
연혁인용:http://www.koreatemple.net/korea_temple/traditional_temple/history/view.asp?temple_seq=1363&category_id=7&content_id=853
신어산(神魚山) 은하사(銀河寺)신어산(神魚山) 은하사(銀河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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