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8호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는 수영사적공원 일대를 말하며 지금은 도심 속에 묻혀서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지나칠만큼 도심 속에 가려저 있습니다.
수영구 망미동과 수영동 일대인 이 지역은 수영팔도시장에서 북쪽방향으로 약간경사진 곳의 작은 구릉지에 있습니다.
이성은 경상좌도 수군의 본영이 있던 곳 임으로 지금으로 치면 해군기지 사령관이나 함대 사령관 정도의 장군이 있는 곳의 군사 방어 시설물로서 한반도 남해안 일대를 커버하는 조선수군의 중요한 시설물입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초라하게 보이며 몇몇 흔적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경상좌도 수군의 주진(主鎭)이었던 곳으로 당시 벼슬로서는 정3품의 무관이 있던 군사영지였습니다.
이 성지(城址)의 역사를 알아보면 경상좌도 수군의 본영으로서 처음에는 감만이포(戡灣夷浦 부산감만동 포구)에 있었는데 조선 태종때에 울산 개운포(開雲浦 울산개운포)로 진영을 옮겼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군사요충지를 감안해서 부산의 동래부 남촌(지금의수영동으로 옮겼습니다.
1636년 인조13년에 당시 사천(絲川)인 지금의 수영천이 범람하여 수군 선창이 매몰유실되어 감만이포(戡灣夷浦)로 다시 옮겼습니다.
1652년 효종3년에 들어와서 감만이포(戡灣夷浦)가 당시 성행하는 왜관이 가까워 군사정보의 누설을 우려해서 이곳 수영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1852년 고종32년에 시행된 군사개혁으로 수영이 혁파될 때까지 243년동안 사용된 조선수군경상좌수영성(朝鮮水軍慶尙左水營城)이 었습니다.
당시 관제(官制)를 보면 경상좌수영에는 정3품 수군절도사가 주재하며 휘하 관할에 1개 첨사영(僉使營)이 있고 상당한 수군이 배속되어 있었습니다.
군사 규모는 좌수영 본진 예하 7개의 진이 있고 65척의 전선(戰船)이 배속되어 있으며 45척의 나룻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담당 군사 방어 지역은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까지 한반도 남동해안 방어 임무의 총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이 성의 최초 축성연대는 불확실하며 현재의 것은 1652년 이곳으로 옮긴 이후 재 축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성을 쌓은 성석(城石)에는 언양,양산등의 인근 지명이 새겨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인근 관할 주민들을 동원한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는 좌수영을 옮긴 직후일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의 규모는 둘레 약 2.7Km 성 높이 약 4m였으며 성내에는 3개의 우물이 있었고 성곽 외부로 통하는 4대문과 배숙4곳 옹성(甕城),치성(雉城),보루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많이 훼손된 시기는 일제시대라고 하며 이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서 폐허화되어 지금 남은 것은 일부 성벽과 홍예 (虹霓)문(무지개형 아치문을 말함) 배수구 등이 있습니다.
부산시립 박물관이 이 지역을 발굴 복원하고 있으며 부산의 사적지로서 교육의 현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중요한 사적지입니다.
참고:
수영은 수군절도사영을 말하며 당시 4도수군 절도사의 편제로 한반도의 바다를 지켰다.4도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 지역을 말한다.
수군도 조선시대의 군사전개 병법으로 보면 주로 좌군과 우군으로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다.경상좌수영이라 함은 한양에서 남도를 볼 때 경상도지역의 낙동강을 기준으로 왼쪽을 말하는 수영(水營-수군절도사의 영지이다.
경상 우수영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수영을 말하며 경상우수군절도사영은 충무에 있었다.경상좌수군절도사영은 부산 수영(당시 동래부 수영에 있었으며 지금 말하는 이곳 좌수영 성지이다.
전라도 좌우 수군의 절도사 영지를 보면 전라좌 수군 절도 사영은 전남 여수에 있었고 전라 우수영 절도 사영은 전남 해남에 있었다.
충청 수군 영지는 충남 보령에 있었으며 경기도 수군절도사영지는 남양 화량만에 있었다고 하지만 충청도와 경기도의 영지는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
당시 품계로 육지에서 최고 사령관인 병마절도사의 품계가 종2품이었음으로 수군절도사의 품계는 정3품이기 때문에 지금의 해군기지 사령관(함대 사령관 정도로 추정됨) 병마절도사의 아래에 위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군 절도사를 지금의 군사제도로 본다면 아마도 제 몇함대 사령관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시 해군은 서해안과 남동해안을 방어하는데는 주력했다고 봅니다.특히 남동해안에 4개함대를 배치한 것을 보면 해양방어 특히 일본에 신경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말하는 이곳 좌수영은 부산에서 동해안까지 커버하는 가장 중요한 수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알아보면 임진왜란 발발 때에 남해 수군 절도사(수사)는 경상좌수영절도사 박홍, 경상우수영절도사 원균, 전라좌수영절도사 이순신, 전라우수영절도사 이억기 였다고 합니다.
본 정보는 좌수영성지 않내판을 참고해서 본인이 터득한 지식을 덧붙여 쓴 것입니다.만약 역사적 오류가 있다면 덧글로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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