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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역사-시사-설화

조선왕조 왕위표와 이성계의 건국

 

재미로 하는 조선 역사의 재고찰


조선은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총 519년 동안 존재했던 나라임.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총 519년 동안 존재했던 나라임.
때로는 근세조선,이씨조선 이라고도 불리곤 했지만 이씨조선이란 말은 틀린말로서 상용하지 않는다.
산군 해군


#종 은 나라를 덕으로 안전하게 유지한 임금에게 붙인다.
#조는 큰공을 나라에 보탠임금을 말한다.
#군은 제대로 왕의 책무를 다하지 모두해 하야한 임금을 말한다.



조선 왕위표 [ 1392년 7월 17일~ 1910년 8월 ]

1. 태 조 ( 1392. 7. 17~ 1398. 9. ) - 2. 정 종 ( 1398. 9 ~ 1400. 11 )- 3. 태 종 ( 1400. 11~ 1423. 5  )- 4.  세 종 ( 1418~ 1450. 2. 17 )-5. 문 종 ( 1450. 2. 17 ~ 1452. 5 ) - 6. 단 종 ( 1452. 5 ~ 1455)-

7. 세 조 ( 1455~ 1468. 9 )-  8. 예 종 ( 1468. 9~ 1469. 11)
-9. 성 종 ( 1469. 11~ 1494)  - 10. 연산군 ( 1494~ 1506. 10?)-11. 중 종 ( 1506. 10~ 1544. 11) - 12. 인 종 ( 1544. 11~ 1545. 7. 1)-13. 명 종 ( 1545. 7. 1~ 1567) - 14. 선 조( 1567~ 1608)-15. 광해군( 1608~1623)- 16. 인 조 ( 1623~ 1649. 5?)

17. 효 종( 1649~ 1659. 5. 5 ) - 18. 현 종 ( 1659. 5. 5~ 1674. 8 )
-19. 숙 종( 1674. 8~ 1720 ) - 20. 경 종 ( 1720~ 1724)-21. 영조( 1724~ 1776. 3 ) - 22. 정 조 ( 1776. 3~ 1800. 12?)-

23. 순 조( 1800. 12?~ 1834) - 24. 헌 종( 1834~ 1849)
-25. 철 종( 1849~ 1863. 12. 8 )- 26. 고 종( 1863. 12.~ 1907. 7 )-
27. 순 종( 1907. 7~ 1910. 8 )

 



조선 건국의 배경


고려말 이성계는 최영과 더불어 나라 최고의 무장이었다.

당시 정세는 해군력이 쇠퇴하고 고려는 일본 해적 왜구가 해상권을 이용해서 배를 타고 전국해안에 수시로 출몰해서 조선을 약탈하고 있었으며 그 세력이 강해서 중국 해안선을 따라서도 약탈을 하여 해안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었으나 조정에서 이들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최영과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치면서 군권을 장악하고 무인이 득세하게 된다.
이 무렵 1388년 원나라를 무너뜨린 명나라가 요동을 접수 관리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오고 고려의 우왕은 이성계에게 군사를 주어 요동을 정벌할 것을 명한다.
(사실 정벌이 아니고 원래 고려땅을 방치하고 있다가 명이 공식적으로 편입하겠다고 하니까 되찾으려고 한 것이며 고려에서는 중원의 나라를 겁내지 않았다)

이성계는 명령을 받아 출정을 하지만 평소 대륙을 원하지도 않았고 전쟁하기도 싫어했던 이성계는 압록강 위화도에서 역심이 생겨 좌군도 통사 조민수와 함께 군대를 돌리고 병력 없는 텅 빈 왕실에서 최영장군과 왕실을 몰아내고 고려를 접수하여 조선을 건국한다.
 
당시 고려 귀족들은 큰 토지를 관리하며 호화롭게 살면서 소국가를 형성할 만큼 큰 세력으로 살면서 정치를 어지럽히고 있던 때에 개혁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혁명하는 이성계는 개혁세력과 손잡고 회군함으로써
중국을 지배하던 원나라의 세력이 없어지고 명이 들어서는 때에  옛 조상들의 땅 요동을 지배할 수 있는 찬스를 버리게 된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왕성했던 인천에서의 외국무역을 차단하게 된다.
고려 왕족들이 무역을 왕성하게 했던 것을 완전히 봉쇄함으로써 조선은 대문을 굳게 닫는 쇄국국가로 바뀌게 된다.

대륙으로 진출하려던 고려의 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으로 바뀌고 수비국가로 정책이 바뀌면서 도읍지를 안전한 남쪽으로 옮기게 된다.

이성계는 국가정책을 쇄국으로 하면서 해상을 포기하여 국가의 조세품을 실은 자국배가 왜구 때문에 조정까지 운반을 못해서 왕실의 살림이 가나 할 정도였다.

안으로는 굳게 문을 잠그고 이웃 강국에게는 대국으로 섬기면서 안위를 보장받는 이른바 사대주의를 시작하게 된다.
이성계는 쇄국정책과 사대주의를 병행함으로써 명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국가가 안전할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의 혁명을 반석 위에 올리는 데는 이 정책이 일조했다고 본다.

 


이야깃거리:
이성계가 무학대사한테서 점지받은 부평에 도읍을 정하려고 부평 100 개봉 우리에 산신제를 지내고 백관과 더불어 도읍을 정 하려 하자 한 개의 봉우리가 너무나 원통해서 폭삭 주저앉아 버렸는데 그 봉우리 있던 자리가 고개가 되어 지금은 원통이(만월산-동암역 앞산-처음에는 가장 큰 주봉이었다고 함) 고개이다.

이성계는 완전히 방어에 안전한 100 개봉 우리가 둘러친 부평이 99개의 봉우리로 바뀐 걸 보고 한양으로 다시 도읍지를 바꾸게 된다.

 

조선은 1392년 태조 이성계의 쿠데타에 의해 출범해서 일본 제국주의 강압에 의한 한일합방으로 1910년 멸망했다.
그동안 정식으로  왕위에 즉위했던 사람은 모두 27명이고 왕위에 즉위하지는 않았지만 죽은 후 왕에  추존된 사람은 모두 9명이다.

왕위에 있다가 제대로 하지몯하고 중도 하차한 왕이 둘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를 세운 군주를 즉 창업군주나 중흥군주에게 '조'라는 묘호를 부여했다. 왕위의 정통성에 문제가 없이 계승한 군주에게는 '종'이란 묘호를 올린다. 

묘호란 조선시대에서 왕이 묻힌 무덤을 종묘라 하고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그 종묘에 봉안하는 위패의 이름이 곧 묘호다. 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세종이나 정조 등 왕의 명칭은 그 왕이 죽은  후에 후학이나 종친 사직에서 부여한 묘호의 이름인 것이다. 조선조에서 처음에'종'이었다가 후에 '조'로 바뀐 왕은 영조(영종), 정조(정종), 순조(순종)가 있으며 고종처럼 자기 맘대로 스스로 황제가 된 경우도 있다. 왕자에게는 '군'이란 칭호를 주는고, 정식 왕비에게서 태어난 왕자는 '대군', 빈(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는 군으로 호칭한다.

 

고로 연산군과 광해군의 경우는 왕에서 쫓겨난 서자왕자로 강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딸의 경우 정식 왕비 소생에게는 '공주'를, 후궁 소생에게는 '옹주'라는 칭호를 주었다.
왕이사 망한 후 편찬되는 재임시절의 공식 기록을 담은 실록은 폐위된 임금은 정식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실록 대신 일기라고 이름을 붙인다.

 

해서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 등 '실록'이 아닌 '일기'가 두 편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단종으로 불리는 조선조 6대 왕은 세조의 쿠데타로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다가 죽은 지 2백 년도 더 지난 숙종 24년(1698)에야 단종으로 복원된웠고, 실록 명도  '노산군일기'에서 '단종대왕실록'으로 바뀌었다

(이때 고려조 충신 진주정 씨의 정분(당시 우의정)님도 복권되었다 - 현재 정분님(애일당)의 묘소는 진주 비봉산에 있으며 그분의 아버지, 그분의 할아버지 와 함께 3 대묘 고분군으로 문화재로 봉안되고 있다 - 관리 세덕사 ).
** 조선이 건국하면서 역적으로 처형했던 인물을 조선이 다시 충신으로 봉안한 인물임 **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이러한 호칭에서도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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