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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화-문학/영화-드라마 이야기

조선검객-무사 백동수

무사 백동수-세자는... 


2011년의 무더운 여름 TV채널이 갑자기 사극으로 가득 하다.
그중에서 SBS 월화드라마  ‘무사 백동수'가 현재는 시청율 1위라고 한다.

제목이 말하는 것 처럼 '무사 백동수'는 사극이지만, 보기드문 조선-검객 드라마이고 왕실은 주역이 아닐수도 있지만,

그래도 왕실이 이야기를 이끌고 또 당시 심각했던
당파폐습이
나라를 망치던 노론과 소론 때인 만큼 제작진은 재미를 위해서 살을 붙일 지라도 비교적 자세히 알수있는 역사적 시기 이기 때문에 사실과 거리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신중한 전개를 위해서 노력할 것 으로 생각한다.
 

 한많은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서 영특하고 훌융한 재질을 가지고 태어 났지만 간신배들과 금단비씨가 열연하는 정순왕후의 지대한 공헌으로 아버지의 명대로 뒤주속에 같히어서 굶어죽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조선왕조 동안 일어난 역사의 한 부분이지요.
짧은 생을 마치지만 그의 아들은 역시 총명하고 훌융한 재질을 이어 받아 정조 임금으로 거듭나는 역사적인 배경은 드라마가 극적인 감동을 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역사의 어디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정도만 보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
역사적으로 당시 일정기간 노론이 주역으로 임금의 전면에 장막을 치던 때 인 만큼 실제로 왕실에 충의를 가진 소론의 힘겨운 싸움에 대한 언급이 균형적으로 다루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세자가 왜 그토록 외로워진 것 인지에 대한 조심스런 이유나 원인도 묘사 된다면 무사 백동수는 단순한 검객드라마에서 진정한 사극-드라마로서도 좋은 역사적 위치를 조명하게 될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검객을 다룬 역사이야기는 많지만 조선 검객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검술 또한 조선 검술은 일본 사무라이 검보다는 상대적으로 조명이 덜된 것으로 볼때 우리 검술을 똑바로 우수한 위상으로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 되며 ,드라마이긴 하지만 조선-검술을 실제로 보여주는 흔치않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운 검술이나 살의로 채운 검술이 다른 것 이고 어느 것이 좋은 것 인가 보다는 실제로 조선검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 있었는지 궁금한 시청자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더욱 돋보일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조에는 이미 모든 무술이 조정에서 관리할 만큼 국가가 체계를 이루고 공식적인 무관을 관리로 뽑을때 이기 때문에 조악하고 제멋대로 산도적 처럼 칼을 휘두르는 시대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해서 어느 유명한 문파나 고수의 수제자가 체계적으로 국가가 교육하고 육성한 무사보다 우수한것 처럼 묘사하는데는 신중 해야 할 것 이다.

어느 무협지를 연상케 하는 최민수의 무겁고 살기 느껴지는 연기는 더위를 식힐만큼 오싹하다.

하지만 시대가 조선이기 때문에 일찍이 접해 보지 못한 무술인의 설정을 시청자는 이해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이 필요 할 것이다. 

대조적으로 조선 선비를 연상케 하는 전광렬씨의 왜소한듯 하나 강력한 카리스마가 조선검객의 자존심을 불러 오는 느낌이다.

이제 소년 백동수는 덜 다듬어진 청년으로 들어서고 인생의 격정기를 맞이할 것으로 생각하며 왕실의 회오리바람도 불어 닥칠 것 임으로 사극으로의 접근이 시작되는 다음편이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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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수 정보출처 : 위키백과

백동수(白東脩, 1743년-1816년):조선후기의 무신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무예도보통지의 편찬 참여.

조선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수원, 휘는 동수(東脩), 자는 영숙(永叔), 호는 인재(靭齋) 또는 야뇌(野餒)이다.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죽은 평안도병마절도사 증 호조판서 충장공 백시구(白時耉)의 증손이며, 백상화(白尙華)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행 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백사굉(白師宏)이고, 이덕무의 처남이기도하다. 조부인 백상화가 증조부 백시구의 서자였기에 신분상 서얼에 속하였다.
부호군 사굉의 아들로 1743년 탄생하여 1771년(영조 47)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나 관직 진출에 제한을 받았다.
1773년 기린협으로 들어가 직접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는 등 오랜 낙백 시절을 거쳐 1776년(정조 즉위년) 부사용(副司勇)을 역임하였다.
1787년(정조 11) 집춘영(集春營) 초관(哨官)을 거쳐 1788년(정조 12) 어영청(御營廳) 초관(哨官)을 역임하였다.
1789년(정조 13) 분수문장(分守門將)에 제수되고, 장용영(壯勇營) 초관(哨官)을 지내고, 이해 4월 검서관(檢書官)이었던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와 함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790년(정조 14) 부사직(副司直)에 단부되고, 이해 6월 3일 훈련주부(訓鍊主簿)에 제수되었다.
1791년(정조 15) 훈련판관(訓鍊判官)에 제수되고, 1792년(정조 16) 충청도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역임하였다.
1795년(정조 19) 자궁(慈宮, 헌경황후 홍씨) 주갑(周甲) 탄신(誕辰) 진찬(進饌) 때 장용영(壯勇營) 초관(哨官)에서 훈련첨정(訓鍊僉正)으로 가설(加設)되었다.
1796년(정조 20) 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를 거쳐 1802년(순조 2) 평안도 박천군수(博川郡守)에 제수되고, 파총(把摠)을 겸(兼)하였다.
1806년(순조 6) 영의정 이병모가 관서의 탐오(貪汚) 함을 아뢰길, "법을 왜곡하지 않고 뇌물을 받았다는 것으로 논하여 죄를 1천리 유형(流刑)에 그치었으나 원지 정배(遠地定配)한 다음, 이어서 금고(禁錮)의 전형을 실시하소서."을 청하자 순조가 말하기를, “해부(該府)에서 이미 도계를 보고 그 죄상(罪狀)을 알고 있으니 이같이 의율(擬律)하는 것이 어떻겠는가?”하고, 그대로 따라 경상도 단성현(慶尙道 丹城縣)에 정배(定配)되었다.
다시 서용되어 1810년(순조 10) 군기부정(軍器副正)에 제수되고, 1816년 향년 74세로 별세하였음

가족관계
증조부 : 백시구(白時耉),조부 : 백상화(白尙華),아버지 : 백사굉(白師宏),동생 : 백동간(白東侃)
부인 :
아들 : 백심진(白心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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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욱 : 백동수(白東修) 역 (아역 : 여진구) ,유승호 : 여운 역 (아역 : 박건태),윤소이 : 황진주(黃進珠) 역 (아역 : 이혜인),신현빈 : 유지선(劉志宣) 역 (아역 : 남지현),전광렬 : 김광택 역,엄효섭 : 백사굉-백동수의 아버지 역,김희정 : 박씨-백동수의 어머니 역,이계인 : 여초상-여운의 아버지 역,성지루 : 황진기-황진주의 아버지역,김다현 : 김홍도 역,김응수 : 유소강-유지선의 아버지 역,장용위,박준규 : 흑사모 역,박원상 : 장대포-장미소의 아버지 역,지유 : 장미소 역(아역서지희),최재환 : 양초립 역 (아역 : 신동우),흑사초롱 최민수 : 천(天) 역☞ 본명: 왕용윤지민 : 지(地) 역,박철민 : 인(人) 역,오만석 : 사도세자 역,전국환 : 영조 역,이원종 : 홍대주<홍사해의 아버지> 역,정호빈 : 임수웅 역,안석환 : 서유대 역,김동균 : 부관 역,금단비 : 정순왕후 역,이시언 : 대흥 역,강성 : 홍사해 역,최윤소 : 구향(九香)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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