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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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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의 바위들 부산의 진산 금정산-바위들의 무상(舞狀) 부산소개 그 세번채 산행을 하다보면 산마다 봉우리마다 형형 색색의 기암들이 있지만 부산의 금정산에있는 바위들은 하나같이 예사롭진않다. 한반도 최남단 끝자락에 뭉친 기운들이 마지막으로 뿜어내듯이 솟아있는 모습들은 대부분의 남부지방 산형이 장년,노년형인데 비해서 여기는 기상이 넘치고 살아있어 진화하는 모습으로 보여지는것은 예사롭지않은 이들 기암들 때문일 것이다. 크고작은 바위들이 줄지어 서있는 산자락을 따라 가면 천년고성이 끝까지 산행을 안내한다. 결코 크거나 높은산이 아니지만 이처럼 살아있는 무상을 연출하며 저아래 부산을 감싸는 이 영산은 부산의 역사이며 부산인의 자존심이다. 이 영산의 자락자락 에는 범어사,부산대학교,동래온천등 찬란한 문화가 면면히 이어저오고 있다..
부산 충렬사 부산 충렬사 1605년 동래부사 윤훤은 충렬공 송상현공을 모시기 위해 동래성 남문 안에 송공사를 건립하고 위패를 모셔 매년 제사를 지냄.1642년에는 충장공 정발 장군도 배향하면서 충렬사라는 사액이 내려짐.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것은 효종 3년 때이며 이때 비로소 사당이 정식으로 창건되고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유생들을 수용하면서 안락서원이라 칭함. 1978년 박정희 정권때에 호국성역으로 확장되어 총 92분의 위패를 모신 대규모 사당으로 발함.부산시와(재)충렬사안락서원에서 매년 2차례 춘추대제를 봉행함. 충렬사는 언젠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정권때에 국민적 충효사상을 제고하는 국책적인 과제로 전국적으로 발굴 계발할 때에 재정비 되었다. 그자리에는 충렬사가 아니더라도 유서깊은 동래의 향교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던 ..
고성에 우거진 수풀 임진왜란이 시작 되었던 그 해에. 동장대를 오르며 블기를 쓴다. 왜구가 국토를 유린하며 상륙하던날 송상현 부사가 저기 저 성루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칠월 무더운 날 고성의 언저리에는 무성한 수풀과 적막이 감돌고 어디서 들려오는 뻐꾸기(풀국새)가 구성진 소리를 내는 이곳에서 세월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잊어 버리게 한다. 건강을 위해 산들을 오르지만 역사의 裸地는 한점도 숨김없이 수풀속에서 그때를 보여주곤한다. 한여름에 흘리는 땀과 함께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산자락을 서성 거리노라면 그때를 영감으로 해서 역사가 상상의 나래를 달고 아득한 역사의 그때에 내가 와 있는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금정산성 부산소개 그 첫번채 부산의 진산 금정산 - (1) 부산을 말한다면 수없이 많은 자랑거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태백준령의 한반도 마지막 기혈이 뭉처 부산에 쏟아붙고있는 금정산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두대간은 우리지리서에 기록된 옳은 지칭이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후학들이배우고 각종 시험에서 산맥 지칭으로 표시되고있기 때문에 대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머뭇거려 집니다. 금정산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북쪽으로 경남 양산시 동면,동쪽으로는 부산의 금정구, 남으로 동래구와 부산진구·연제구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부산의 북구에 접하여 낙동강에 이르고 있는 부산인의 마음속에 자리하는 진산으로서 주봉인 고당봉(801.5m)을 중심으로 장군봉(727m),상계봉(638m),백양산(642m)까지 이어져 있고..
부산의 진산 금정산의 바위들 부산소개 그 두번채 부산의 진산 금정산 - (2) 금정산이야기 첫번채 에서 행정구역이나 산의 대략적인 동식물 분포는 언급했음으로 이번에는 금정산을 오르는 코스중에 일반인이 가장선호하는 동문에서 고당봉까지의 등산로를 소개하고 가는도중 도중에 산재한 볼거리를 사진과 함께 조금씩 옮겨 볼것입니다. 동문입구에서 가든길(차도)로 곧장 100쯤 가면 주차장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오신분은 거기 주차하시고,온천장에서 버스를 타고오신분은 곧바로 동문표지쪽으로 600m정도 가면 동문이 나옵니다. 동문을 들어서면 저멀리 아스라히 보이는 저곳으로 진행할것입니다. 지금부터 산행길 4.7KM를 갈것인데 ,산을 잘타는분들은 1시간 반정도 걸리며 보통사람이나 초보 산행인들은 2시간에서 3시간정도 보면 될것입니다. 동문을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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