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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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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동래의총(壬辰東萊義塚) -임진전망유해지총(壬辰戰亡遺骸之塚). 임진동래의총(壬辰東萊義塚). -임진전망유해지총(壬辰戰亡遺骸之塚)-부산동래 금강공원내에 있는 역사유적. 부산과역시지정기념물 제 13호 1592년 임진년 선조 25년 오전에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수많은 군선과 함께 부산진첨사 정발이 지키고 있던 부산진성을 공격하고 함락시킨다. 이미 소식을 들은 동래부사 송상현은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준비에 임했다. 인근 지원군도 속속 도착하고 전투준비를 했으나 워낙 중과부족으로 어려운 전쟁임을 알지만 동래성의 민관군은 일심 단결했다.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여세를 몰아 고니시 유키나가는 동래성에 도착하자 성 앞에서 병력을 과시하며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즉 "싸워 보고싶다면 싸우고 싸우기싫다면 길을 비켜라" 라는 오만한 글을 전투를 하기전에 송상현에게 깃발에..
부산 충렬사 부산 충렬사 1605년 동래부사 윤훤은 충렬공 송상현공을 모시기 위해 동래성 남문 안에 송공사를 건립하고 위패를 모셔 매년 제사를 지냄.1642년에는 충장공 정발 장군도 배향하면서 충렬사라는 사액이 내려짐.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것은 효종 3년 때이며 이때 비로소 사당이 정식으로 창건되고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유생들을 수용하면서 안락서원이라 칭함. 1978년 박정희 정권때에 호국성역으로 확장되어 총 92분의 위패를 모신 대규모 사당으로 발함.부산시와(재)충렬사안락서원에서 매년 2차례 춘추대제를 봉행함. 충렬사는 언젠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정권때에 국민적 충효사상을 제고하는 국책적인 과제로 전국적으로 발굴 계발할 때에 재정비 되었다. 그자리에는 충렬사가 아니더라도 유서깊은 동래의 향교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던 ..
고성에 우거진 수풀 임진왜란이 시작 되었던 그 해에. 동장대를 오르며 블기를 쓴다. 왜구가 국토를 유린하며 상륙하던날 송상현 부사가 저기 저 성루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칠월 무더운 날 고성의 언저리에는 무성한 수풀과 적막이 감돌고 어디서 들려오는 뻐꾸기(풀국새)가 구성진 소리를 내는 이곳에서 세월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잊어 버리게 한다. 건강을 위해 산들을 오르지만 역사의 裸地는 한점도 숨김없이 수풀속에서 그때를 보여주곤한다. 한여름에 흘리는 땀과 함께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산자락을 서성 거리노라면 그때를 영감으로 해서 역사가 상상의 나래를 달고 아득한 역사의 그때에 내가 와 있는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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